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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제1회 도원결의 (1)

by 장만리 2024. 10. 26.

 

장강은 끊임없이 동쪽으로 흐르고, 그 물결은 옛 영웅들을 모두 흘려보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다투어도, 뒤돌아보면 결국 모두 헛된 일입니다.
청산은 그대로이건만 해는 수없이 붉게 저물었고, 이제 백발이 된 어부와 나무꾼은 강가에서 가을 달과 봄 풍경을 바라보며 탁주 한 병으로 삶을 즐깁니다.
옛이야기는 그저 농담처럼 주고받을 뿐입니다.

 

이야기의 시작

 

옛말에 이르길, “천하의 대세는 오래 나뉘면 다시 합치고, 오래 합치면 다시 나뉜다” 하였습니다.
주나라 말에 한국, 위국, 조국, 연국, 진국, 제국, 초국 일곱 나라가 나뉘어 다투었지만 결국 진나라로 통일되었습니다.
진나라가 망하자 초와 한이 갈라져 싸웠고, 다시 한나라로 통일되었지요.
한나라는 유방이 흰 뱀을 베어 죽이고 의병을 일으켜 천하를 통일하였고, 뒤에 광무제가 중흥하여 헌제에 이르기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세 나라로 나뉘었습니다.

이 모든 혼란은 환제 영제 때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권력 다툼과 반란의 시작

 

환제는 선비들이 출세하지 못하게 하고 대신 환관들을 중용했습니다.
환제가 죽고 영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두무 태부 진번이 보좌하였으나, 환관 조절이 권세를 쥐고 점점 힘을 키우자 두무와 진번은 그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새어나가 오히려 두무와 진번이 해를 입고, 환관들의 횡포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건녕 2년 4월 보름날, 황제가 온덕전에 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대궐 모퉁이에서 거센 바람이 불더니 큰 푸른 뱀이 대들보에서 내려와 의자 위에 똬리를 틀었습니다.
황제가 놀라 쓰러지자 시종들이 급히 구해 궁으로 옮겼고, 신하들도 모두 도망쳤습니다.
뱀은 곧 사라졌지만, 천둥과 함께 큰 비와 우박이 내려 많은 집이 부서졌습니다.

 

계속되는 불길한 징조

 

건녕 4년 2월에는 낙양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해일로 인해 해안의 백성들이 바다에 휩쓸려 갔습니다.
광화 원년에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했고, 6월 초하루에는 검은 기운이 궁전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가을 7월에는 무지개가 궁전에서 나타나고, 오원산 언덕이 무너지는 등 불길한 징조가 이어졌습니다.

 

 

조정의 혼란과 십상시의 권력 장악

 

황제는 재앙의 원인을 묻고자 조칙을 내려 신하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의랑 채옹이 상소를 올리며 말했습니다.

 

“뱀이 떨어지고 닭이 변한 것은 외척과 환관들이 정사에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채옹의 이 말은 간절하고 솔직했으나, 황제는 상소문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 상소를 엿본 조절은 채옹을 죄에 빠뜨려 벼슬에서 쫓아내고 시골로 내려보냈습니다.
이후 장양, 조충, 봉서, 단규, 조절, 후람, 건석, 정광, 하운, 곽승 등 열 명의 환관이 권력을 쥐게 되어 ‘십상시’로 불리며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특히 장양을 “아버지”라 부르며 깊이 의지하였고, 조정은 날로 썩어갔으며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이때부터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천하는 다시 큰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장각과 그의 형제들

 

거록군에는 장각, 장보, 장량이라는 세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형 장각은 과거 시험에 실패한 뒤 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푸른 눈을 가진 동안의 노인을 만나게 되었지요.
이 노인은 '청려장' 지팡이를 짚고 장각을 동굴로 데리고 들어가 천서 세 권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 책은 태평요술이라네.

네가 이 책을 터득하면 하늘을 대신해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걸세.
그러나 나쁜 마음이 생기면 불운이 따를 것이다.”

 

장각이 노인의 이름을 묻자, 그는 남화노선이라 밝히고 한줄기의 바람으로 바뀌어 사라졌습니다.

장각은 이 천서를 밤낮으로 익혔고, 비와 바람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지요.

그는 스스로 태평도인이라 부르며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장각의 대현량사 활동과 반란 준비

 

중평 원년 정월, 전염병이 퍼지자 장각은 부적과 물을 나눠주며 사람들의 병을 고쳤습니다. 

그는 스스로 '대현량사' 즉 '어질고 좋은 스승'이라 칭하고 활동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의 제자는 500명이 되었고,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 각지로 퍼졌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구름같이 사방으로 다니면서 부적을 써주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무리는 36개의 큰 조직으로 확장되었고, 각 조직에는 ‘장군’이라는 우두머리를 두어 수천 명에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장각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푸른 하늘은 죽고, 누런 하늘이 새롭게 떠오를 것이다. 갑자년이 오면 천하가 다시 평안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집 대문에 백토로 ‘갑자’라 적었고, 청주, 유주, 서주, 기주, 형주, 양주, 연주, 예주 등의 주민들은 집집마다 장각을 대현량사로 섬겼습니다.

 

반란 준비와 내응 작전

 

장각은 자신의 수하 마원의를 보내 환관 봉서를 매수하고, 내응(*내부에서 몰래 적과 통함)을 부탁했습니다. 

그는 두 동생 장보와 장량에게 말했습니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이제 민심은 이미 우리에게로 돌아섰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장각은 누런 깃발을 만들며 거사 일자를 정했고, 제자 당주를 보내 봉서에게 알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당주는 곧바로 관청에 이를 고발했고, 이에 황제는 대장군 하진을 불러 마원의를 체포하고 관련자들을 처형하라 명했습니다.

 

 

 

감상

이 글은 명나라 작가 나관중의 장편 소설 《삼국지연의》의 서두입니다.

연의는 역사를 소설 형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삼국지연의》 의 배경은 후한 말기의 혼란에서 삼국의 정립, 그리고 진나라의 성립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파란만장한 역사와 인간 군상을 생동감 넘치게 보여주고, 권력의 정점에서 어김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몰락해 가는 후한 조정의 부패와 황제의 무능함을 배경으로, 장각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백성들의 민심을 얻고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장강의 물결처럼 흘러간 과거 영웅들을 회상하며 “천하의 대세는 합치면 나뉘고, 나뉘면 다시 합친다”는 순환을 깨닫게 합니다.

인간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각자의 욕망 속에서 우왕좌왕함을 보여주는 유쾌한 풍자이기도 하지요.

이 이야기는 삼국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인간의 허망함, 아슬아슬한 정치 줄타기의 매력을 유쾌하게 깨닫게 해주는 역사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