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 불길한 징조를 외면하다
동탁이 미오성을 떠나기 전, 어머니를 찾아 작별 인사를 드렸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90세를 훌쩍 넘긴 나이였다.
"우리 아들아, 어디를 가느냐?" 어머니가 물었다.
"한나라의 선위를 받아옵니다.
어머니께서도 곧 태후가 되실 것입니다!" 동탁이 대답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심란한 얼굴로 말했다.
"요즘 따라 몸이 떨리고 가슴이 뛰니, 아무래도 길한 징조가 아닌 듯하구나."
동탁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웃음을 지었다.
"장차 국모가 되시니 미리 떨림이 있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는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출발하기 전, 초선에게 말했다.
"내가 천자가 되면 너를 귀비로 세울 것이다."
초선은 모든 상황을 깨닫고 있었지만, 거짓으로 기쁜 척하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동탁은 미오성을 떠나 장안으로 향하는 길에 나섰다.
30리를 못 가서 타고 있던 수레의 바퀴 하나가 부러졌다.
그는 수레에서 내려 말을 탔으나, 또 10리를 가지 못하고 말이 갑자기 울부짖으며 고삐를 끊고 날뛰기 시작했다.
"수레바퀴가 부러지고 말이 고삐를 끊었으니, 이는 무슨 징조인가?" 동탁이 물었다.
그의 측근 이숙이 이렇게 해석했다.
"태사께서 곧 한나라의 선위를 받아 새롭게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곧 옥 가마와 황금 안장을 타실 길조입니다."
동탁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의심 없이 믿어버렸다.
붉은빛과 아이들의 노래
동탁의 행렬이 다음 날 길을 나섰다.
그러나 갑자기 강풍이 몰아치고 짙은 안개가 하늘을 덮었다.
동탁이 당황하며 이숙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징조인가?”
이숙이 즉시 대답했다.
“주공께서 용상에 오르시니, 붉은빛과 자줏빛 안개가 하늘을 물들여 위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동탁은 기뻐하며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성 밖에 도착하니 백관들이 모두 나와 동탁을 환영했지만, 이유는 병이 나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동탁이 승상부에 도착하자 여포가 들어와 축하 인사를 올렸다.
“내가 구오(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너를 천하 병마의 총사령관으로 삼겠다.”
여포는 절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여포는 곧 장막으로 돌아가 쉬며 밤을 맞았다.
그날 밤, 교외에서 들려온 아이들의 노래는 강풍에 실려 장막 안까지 울려 퍼졌다.
“천리 풀은 어찌 이리 푸르고,
열흘 점쟁이는 살지 못하리라!”
노랫소리는 애처롭고 슬펐다.
동탁은 이를 듣고 이숙에게 물었다.
“아이들의 노래가 무슨 길흉을 의미하느냐?”
이숙이 태연히 대답했다.
“단지 유씨가 몰락하고 동씨가 흥한다는 뜻입니다.”
불길한 전조의 날, 심판의 문 앞에 선 동탁
다음 날 새벽, 동탁은 화려한 의장과 수행원을 거느리고 조정에 나섰다.
갑자기 한 도인이 나타났는데, 그는 청색 도포와 흰 두건을 쓰고 손에 긴 장대를 들고 있었다.
장대 끝에는 한 자(尺) 길이의 천 조각이 묶여 있었고, 그 양 끝에는 ‘口’(입 구) 자가 쓰여 있었다.
동탁은 이를 보고 당황하여 이숙에게 물었다.
"저 도인은 무슨 의도를 가진 것이냐?"
"그는 아마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이숙은 장교들을 불러 도인을 쫓아내게 했다.
이어 동탁은 조정으로 나아갔다.
조정에는 신하들이 모두 조복을 입고 길가에서 영접하고 있었다.
이숙은 손에 보검을 들고 동탁의 수레를 호위하며 함께 갔다.
북액문에 도착하자 군사들이 문 밖에서 모두 막아서고, 오직 동탁의 수행원 20여 명만 수레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반역의 끝, 운명을 맞이한 동탁
동탁이 멀리서 왕윤과 여러 신하들이 검을 들고 궁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자 놀라서 이숙에게 물었다.
“저들은 왜 검을 들고 있는가?”
이숙은 대답하지 않고 수레를 밀어 궁으로 들어갔다.
왕윤이 크게 외쳤다.
“반역자가 여기까지 왔다! 무사들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양쪽에서 백여 명의 병사들이 창과 긴 창을 들고 튀어나와 동탁을 공격했다.
동탁은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창이 뚫리지 않았지만, 팔에 상처를 입고 수레에서 떨어졌다.
쓰러지며 동탁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아들 봉선(여포)은 어디 있느냐?”
그 순간, 여포가 수레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타났다.
“황제의 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노라!”
여포는 방천화극으로 동탁의 목을 겨냥하며 목구멍을 단번에 찔렀다.
이숙이 재빠르게 동탁의 머리를 베어 들었다.
여포는 한 손으로 극을 쥐고 다른 손으로 품속에서 황제의 조서를 꺼내 높이 들며 외쳤다.
“황제의 명령으로 역적 동탁을 토벌하노니, 그 나머지 사람들은 죄를 묻지 않는다!”
이 말이 끝나자 장수와 병사들이 모두 만세를 외치며 기뻐했다.
천운의 장난, 동탁의 몰락
霸業成時爲帝王,
不成且作富家郎。
誰知天意無私曲,
郿塢方成已滅亡。
패권을 이루면 황제가 되고,
못 이루면 부유한 집안 어르신이라도 되겠지.
누가 알았으랴, 하늘 뜻은 치우침이 없어,
막 미오성을 쌓으니 곧 멸망해 버렸구나.
동탁의 종말과 장안의 대격변
한편, 그 자리에서 여포가 크게 외치며 말하기를,
“동탁의 악행을 돕던 자는 모두 이유다! 누가 잡아오겠느냐?”
그러자 이숙이 응답하며 나서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정의 문 밖에서 함성이 들리고, 어떤 이가 보고하기를 이유의 하인들이 이미 이유를 포박하여 데려왔다고 알렸다.
왕윤이 명하여 이유를 저잣거리로 끌고 가 목을 베개 했다.
이후 동탁의 머리를 길거리에 내걸고 사람들에게 경고하게 했다.
동탁의 시신은 워낙 비만하여, 군사들이 그의 배꼽에 불을 지펴 등불 삼았고, 기름이 흘러 땅을 덮었다.
지나가는 백성들 중에 그의 머리를 던지거나 시체를 걷어차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왕윤은 여포에게 명하여 황보숭과 이숙과 함께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미오로 진군하여 동탁의 집안 재산과 사람들을 몰수하게 했다.
여포의 진군, 미오성의 마지막 날들
동탁이 죽고, 그의 잔당 이각, 곽사, 장제, 번조는 여포가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비웅군을 이끌고 서량으로 달아났다.
여포가 미오성에 이르자 가장 먼저 초선을 데리고 갔다.
황보숭은 명령을 내려 미오성에 감금되어 있던 양갓집 여자들을 모두 풀어주었지만, 동탁의 친족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처형했다.
동탁의 어머니 역시 그 손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의 동생 동민과 조카 동황도 참수되어 목이 걸렸다.
미오성에 쌓아둔 재산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황금 수십만 양, 백은 수백만 양, 비단과 보석, 진귀한 그릇과 양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여포는 이 모든 것을 몰수한 뒤 왕윤에게 보고했다. 왕윤은 이를 크게 기뻐하며 군사들에게 잔치를 열어 위로하고, 도당에서 관리들을 모아 축하의 잔을 베풀었다.
역적을 위한 눈물, 채옹의 비극
잔치가 한창이던 중, 누군가 다급히 들어와 말했습니다.
“동탁의 시체가 시장에 버려졌는데, 어떤 사람이 그 시체를 붙잡고 크게 통곡하고 있습니다.”
왕윤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동탁이 죽어 백성 모두가 축하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혼자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그는 즉시 무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가서 그놈을 잡아오라!”
잠시 뒤, 그 사람이 끌려왔습니다. 모두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는 바로 시중 채옹이었습니다.
왕윤은 호통쳤습니다.
“동탁은 나라를 어지럽힌 역적이다. 오늘 그가 처단된 것은 국가의 큰 경사인데, 너는 한나라 신하로서 축하하지 않고 역적을 위해 울다니 어찌 된 일이냐?”
채옹은 땅에 엎드려 죄를 인정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비록 재능은 없으나, 대의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어찌 나라를 저버리고 동탁을 따르겠습니까?
다만 한때 그가 저를 알아보고 대우해 준 은혜를 잊지 못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제 죄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공께서 용서해 주신다면, 제가 얼굴에 죄명을 새기고 발을 잘려도 좋으니, 한나라 역사서를 마저 완성하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 제겐 다행일 뿐입니다.”
채옹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관리들이 모두 그를 구명하려 노력했습니다.
왕윤과 채옹의 엇갈린 운명
마일제 태부가 왕윤에게 비밀스럽게 말했다.
“채옹(伯喈)은 세상에 드문 뛰어난 인재입니다.
만약 그에게 한나라 역사서를 계속 완성하게 한다면 정말 대단한 업적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의 효행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를 서둘러 죽인다면 백성들의 신망을 잃을까 걱정됩니다.”
왕윤은 이에 대답했다.
“예전에 한나라 효무제가 사마천을 죽이지 않아 그로 하여금 역사를 쓰게 했으니, 결국 후세에 헐뜯는 글이 떠돌게 되었습니다.
지금 국운은 쇠퇴하고 조정은 혼란스러운데, 어린 황제의 곁에 간신배가 역사서를 쓴다면 우리 모두 비난받게 될 것입니다.”
마일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물러났다.
그는 다른 관리들에게 말했다.
“왕윤은 아마 후손을 남기지 못할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나라의 기강이요, 역사서는 국가의 전범입니다.
기강을 없애고 전범을 폐지하면 어찌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겠습니까?”
왕윤은 마일제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채옹을 감옥에 가두어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령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대부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후세 사람들은 말했다.
“채옹이 동탁을 위해 곡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왕윤이 그를 죽인 것은 너무 지나쳤다.”
후대의 평가
후세의 한 사관은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선한 사람은 나라의 기둥이고,
역사 기록은 국가의 전범이었네.
그 기둥을 부수고 전범을 없앤다면,
오래갈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간신의 몰락을 슬퍼하며
董卓專權肆不仁,
侍中何自竟亡身?
當時諸葛隆中臥,
安肯輕身事亂臣?
동탁은 권력을 휘두르며 참혹하게 굴었으니,
채옹은 어찌 스스로 목숨을 잃었단 말인가?
그 시절, 제갈량은 융중에서 조용히 은거하며,
어찌 경솔히 몸을 난신(亂臣)에게 맡기겠는가?
사면을 거부당한 역적들, 복수를 결의하다
이각, 곽사, 장제, 번조는 동탁이 죽은 뒤 섬서로 도망가 숨어 지냈다.
그들은 장안에 사자를 보내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왕윤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말했다.
“동탁의 전횡은 모두 이 네 사람이 도운 것이다.
천하에 사면을 내린다 해도 이 넷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사자가 돌아와 이 소식을 전하자, 이각이 탄식했다.
“사면도 거부당했으니 이제 각자 살길을 찾아야겠구나.”
이때 모사 가후가 계책을 내놓았다.
“여러분이 군사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다면, 고작 정장(亭長, 작은 마을의 관리) 하나가 여러분을 잡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대신 섬서 사람들을 유인해 병력을 모으고, 기존 군사와 합세해 장안을 공격하십시오.
동탁의 원수를 갚고 조정을 장악해 천하를 바로잡으면 됩니다.
일이 성공하면 조정을 받들어 천하를 다스리고, 실패하더라도 그때 도망치면 늦지 않습니다.”
이각 등은 이 계책에 찬성했다. 서량 지역에 소문을 퍼뜨려 이렇게 말했다.
“왕윤이 곧 서량의 모든 사람을 몰살시키려 한다!”
이 소문에 사람들은 크게 놀라 당황했다.
이각은 다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죽음을 헛되이 맞는 건 소용없다! 나를 따라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이각의 반란에 동조하게 되었다.
장안으로의 진격
서량의 반군은 군중 10여 만을 모아 네 갈래로 나누어 장안을 향해 진군했다.
이 과정에서 동탁의 사위이자 중랑장인 우보(牛輔)가 오천 병사를 이끌고 동탁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
이각은 군사를 합치고 우보를 선봉으로 삼아 네 갈래 군대를 계속 전진시켰다.
왕윤은 서량군의 진격 소식을 듣고 여포와 논의했다.
이에 여포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를,
“사도님, 안심하십시오. 저 쥐새끼 같은 자들은 셀 필요조차 없습니다!”
곧 여포는 이숙을 선봉으로 하여 병력을 이끌고 맞섰다.
이숙은 우보와 맞붙어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우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패퇴했다.
하지만 같은 날 밤, 우보는 이숙의 방심을 틈타 야간 기습을 감행했다.
이숙의 군대는 어지러이 흩어졌고, 30여 리를 후퇴하며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이숙은 패배 소식을 가지고 여포에게 돌아왔다.
여포는 크게 노하여 이숙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어찌 내 위엄을 꺾어놓느냐!”
즉시 이숙을 참수하고 그의 머리를 군문에 걸어두었다.
배신과 음모의 끝
다음 날, 여포는 군대를 이끌고 우보(牛輔)와 맞붙었다.
하지만 우보는 여포의 용맹함에 대적할 수 없었고, 대패하여 달아났다.
그날 밤, 우보는 심복인 호적아(胡赤兒)를 불러 은밀히 상의하며 말했다.
"여포의 뛰어난 용맹을 감당할 수 없다.
이각(李傕) 등 네 사람을 속이고 금과 보물을 몰래 숨긴 뒤, 심복 몇 명과 함께 군을 버리고 떠나자."
호적아는 이 계획에 동의했다.
그날 밤, 금과 보물을 챙긴 뒤, 우보는 심복 서너 명과 함께 몰래 군영을 떠났다.
그러나 도망치는 도중, 강을 건너려던 호적아는 금과 보물을 탐내며 우보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여포에게 바쳤다.
여포는 상황을 추궁한 끝에 진상을 알아냈다.
부하가 자백하기를, "호적아가 우보를 꾀어내어 죽이고 금과 보물을 빼앗았습니다."라고 했다.
여포는 분노하며 즉시 호적아를 처형하고, 군을 이끌고 전진하여 이각의 군대와 마주쳤다.
용맹한 죽음, 왕윤의 최후
여포는 적의 전열이 갖춰지기도 전에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군사를 지휘해 곧장 돌진했다.
이각의 군대는 막아내지 못하고 50리 이상 물러나 산 아래 진영에 숨어버렸다.
이각은 퇴각한 뒤 곽사, 장제, 번조를 불러 의논하며 말했다.
“여포가 비록 용맹하긴 하나, 계책이 없으니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내가 군대를 이끌고 협곡 입구를 지키며 매일 전투를 유도할 것이오.
곽 장군은 군을 이끌고 적의 배후를 기습하십시오.
옛날 팽월이 초나라를 교란시켰던 전법을 본받아 징을 울려 진격하고 북을 치며 물러나는 방식으로 혼란을 일으키시오.
장제와 번조 두 분은 병력을 나눠 양 갈래로 진격해 곧장 장안을 점령하십시오.
여포는 머리와 꼬리를 모두 돌볼 수 없게 될 것이니, 필히 대패할 것입니다.”
모두가 이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여포, 함정 속에 갇히다
여포가 병사를 이끌고 산 아래에 도착하니, 이각이 군사를 내어 싸움을 걸어왔다.
여포는 분노하며 돌격해 이각의 군사를 물리쳤으나, 이각은 산으로 도망쳤다.
산 위에서는 화살과 돌이 비처럼 쏟아져 여포의 군대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 보고하기를 “곽사가 후방에서 습격해오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여포는 급히 군대를 돌려 싸웠으나, 북소리가 크게 울리자 곽사는 도망쳤다.
여포가 군대를 정비하려는 순간, 징소리가 울리며 이각의 군대가 다시 내려왔다.
여포는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뒤에서 곽사가 다시 군대를 이끌고 달려들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 이각과 곽사는 번갈아 가며 여포를 괴롭혔다.
여포는 싸울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 분통이 터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전령이 말을 달려오며 보고하기를 “장제와 번조의 군대가 장안을 공격해 왕성이 위급합니다!”라고 전했다.
여포는 황급히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려 했지만, 이각과 곽사가 뒤쫓아왔다.
여포는 전투를 지속할 수 없어 무작정 도망쳤으나, 많은 병력을 잃고 말았다.
장안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적병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여포의 군대는 적병과 싸웠으나 연달아 패배했다.
여포의 군사들은 그의 성격을 두려워하여 적에게 항복하는 자가 속출했고, 여포는 깊은 근심에 빠졌다.
화염 속의 결단
며칠 뒤, 동탁의 잔당인 이몽과 왕방이 장안 성에서 적의 내응 세력으로서 성문을 몰래 열었다.
이에 사방의 적군이 동시에 성으로 몰려들었다.
여포는 좌충우돌하며 저지하려 했지만 결국 막아낼 수 없었다.
그는 수백 기병을 이끌고 청쇄문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왕윤을 부르며 외쳤다.
“형세가 급박합니다! 사도님, 부디 말을 타고 저와 함께 관문을 넘어 새로운 계책을 도모합시다.”
왕윤은 담담히 대답했다.
“사직(社稷)의 신령이 도와 나라가 안정된다면 그것이 내 소원이오.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었소.
난세에 구차하게 살아남을 수는 없소.
나를 대신해 관동의 제후들에게 전해 주시오.
모두가 나라를 위해 마음을 다하길 바란다고.”
여포는 거듭 권했지만, 왕윤은 끝내 거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의 모든 문에서 화염이 하늘로 치솟았다.
여포는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가족마저도 버리고 백여 기병만 이끌고 관문을 넘으며 원술에게 몸을 의탁하러 달아났다.
이각과 곽사의 반란
이각과 곽사가 군대를 풀어 장안성을 약탈했다.
이 과정에서 태상경 종불, 태복 노규, 대홍로 주환, 성문교위 최열, 월기교위 왕기가 모두 희생되었다.
적병이 궁궐의 내정을 에워싸며 위기가 고조되자, 신하들은 헌제에게 선평문으로 올라가 난리를 진정시킬 것을 청했다.
헌제가 누각 위로 올라가자, 이각과 곽사가 황제의 황금 수레를 멀리서 보고 병사들에게 멈추라 명하며 "만세"를 외쳤다.
헌제가 누각에 기대어 아래를 바라보며 물었다.
“경들은 주청도 없이 장안에 들어왔으니, 그 목적이 무엇이냐?”
이각과 곽사는 얼굴을 들어 대답했다.
“동 태사는 폐하의 나라를 지키던 충신인데, 이유 없이 왕윤의 음모로 살해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복수를 위해 왔을 뿐, 결코 반역할 마음은 없습니다.
왕윤만 넘겨주신다면 즉시 병력을 물리겠습니다.”
용맹한 죽음, 왕윤의 최후
왕윤은 황제 곁에서 이각과 곽사의 말을 들었다.
그는 황제에게 아뢰며 말했다.
“신은 오직 나라를 위해 이 계책을 세웠습니다.
일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폐하께서 신을 아끼다 나라를 망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신이 아래로 내려가 두 도적을 만나겠습니다.”
황제는 그의 말을 듣고 차마 허락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나 왕윤은 머뭇거림 없이 선평문의 누각에서 뛰어내리며 크게 외쳤다.
“왕윤이 여기 있다!”
이각과 곽사는 검을 뽑으며 꾸짖었다.
“동 태사가 무슨 죄로 살해됐단 말인가?”
왕윤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동탁은 그 죄악이 하늘에 닿고 땅을 뒤덮었으며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그가 처형된 날, 장안의 백성들이 모두 축하하지 않았는가?
너희들만 못 들었단 말인가?”
이각과 곽사가 말하길,
“태사가 죄가 있다 한들, 우리까지 왜 사면받지 못한단 말인가?”
왕윤은 크게 욕하며 말했다.
“역적 놈들, 말이 왜 이렇게 많은가! 나는 오늘 죽을 뿐이다!”
두 도적은 검을 휘둘러 왕윤을 누각 아래에서 처형했다.
왕윤의 충성과 비통함을 노래하다
사관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왕윤의 기략으로 꾀를 꾸며,
간신 동탁은 마침내 멸망했네.
가슴에는 나라를 위한 한이 가득하고,
이마에는 조정을 위한 근심이 맺혀 있구나.
그의 기개는 하늘과 은하수를 잇고,
그의 충성은 북두성과 견우성을 꿰뚫었네.
오늘날까지도 그의 혼백은
봉황루를 감도는 듯하네."
왕윤의 희생 뒤 되풀이되는 혼란
도적들이 왕윤을 죽이고, 곧이어 사람을 보내 그의 가문 친족,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죽였다.
백성들 중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때, 이각과 곽사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이미 이곳까지 왔으니, 이제 천자를 죽이고 큰일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언제 하겠는가?”
그리하여 두 사람은 칼을 들고 크게 외치며 궁궐 안으로 돌진했다.
이는 바로 다음과 같은 상황을 묘사한 말이다:
"거대한 악당이 죗값을 받아 재앙이 겨우 멈췄는데,
잔당이 다시 날뛰며 새로운 재앙을 불러오네."
"헌제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다음 이야기를 통해 밝혀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