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의 곤궁과 양표의 중재 시도
다시 말해, 곽사의 군대가 들이닥치자 이각은 진영을 나와 싸웠는데, 곽사 군이 밀려나자 잠시 물러났다.
이각은 황제와 황후를 미오(郿塢)로 옮겨 조카 이섬에게 감독시키고, 궁중의 연락을 끊어버려 음식도 제대로 대지 않았다.
시종과 신하들은 굶주려 얼굴이 파랬다.
황제가 사람을 시켜 이각에게 쌀 다섯 곡(斛)과 소뼈 다섯 해를 구해 좌우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려 했으나, 이각이 화내며,
“아침저녁으로 밥을 내는데, 또 무엇을 요구한단 말인가?”
하고는 상한 고기와 썩은 양식을 보내 냄새가 심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황제가 이를 듣고 분노하며,
“역적이 이렇게까지 나를 능멸하는구나!”
하고 욕하니, 시중 양기가 급히 간언 하였다.
“이각은 본래 잔혹한 자이옵니다.
사세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폐하께서도 부디 참으시고 그의 예봉을 건드리지 마소서.”
황제는 머리를 떨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옷소매를 적실뿐이었다.

곽사의 또 다른 침공과 양표의 화해 주선
그때 측근이 급히 보고하기를,
“한 갈래 군마가 창칼이 햇빛에 번쩍이고, 북과 징 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어가를 구하러 다가옵니다.”
하였으나, 황제가 알아보니 곽사 군대였다.
황제는 다시금 근심에 빠졌다.
밖에서 함성이 크게 일더니, 이각이 군사를 거느리고 곽사를 맞아 채찍으로 가리키며 욕하였다.
“내가 너를 박대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나를 죽이려 하느냐!”
곽사가 대꾸하기를,
“네가 반역의 도적인데, 어찌 죽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니, 이각이,
“나는 지금 황제를 모시고 있는데 무엇이 반역이냐!”
라고 소리쳤다. 곽사가,
“황제를 협박하는 것이지 어찌 모시는 것이냐!”
라고 받으니, 이각이 언성을 높여,
“쓸데없는 말 말고, 우리 둘이 군사를 쓰지 말고 결판을 내 보자.
이긴 자가 황제를 데려가는 것이다!”
하고, 바로 진 앞에서 일대일로 격돌해 열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때 양표가 말을 몰고 나와 크게 외쳤다.
“두 장군께서는 잠시 멈추시오!
이 늙은이가 여러 관원을 데리고 와 화친을 주선하오.”
이에 이각과 곽사는 각자 진영으로 물러났다.

곽사의 인질극과 주준의 죽음
양표와 주준이 궁중 관리 60여 명과 함께 곽사 진영으로 가 화의를 권하였으나, 곽사는 이들을 모조리 감금했다.
관리들이 항의하기를,
“우리는 두 분을 화해시키고자 온 사람들인데, 어찌 이토록 대하시오?”
라고 하자, 곽사가 대답하였다.
“이각이 황제를 붙잡았는데, 내가 공경(公卿)을 붙잡지 못할 이유가 있더냐!”
양표가 말하기를,
“한쪽은 황제를 겁박하고, 한쪽은 공경을 겁박하니,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곽사가 화를 내며 칼을 뽑아 양표를 죽이려 했으나, 중랑장 양밀이 간신히 말려, 양표와 주준만 풀어주고 나머지는 계속 감금하였다.
양표가 주준에게 탄식하길,
“사직의 신하로서 임금을 바로잡아 구하지 못하니, 헛되이 천지에 태어났을 뿐이오!”
라고 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다가 결국 쓰러졌고, 주준은 집에 돌아간 뒤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이로부터 이각과 곽사는 매일같이 50일 넘게 싸워, 죽은 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가후의 음책과 양봉의 반기
한편, 이각은 평소 이단적 요사술(妖邪術)을 좋아해, 늘 여자 무당에게 북을 치며 신탁을 내리도록 했다.
가후가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듣지 않았다.
시중 양기가 은밀히 헌제에게,
“신이 보기에 가후는 비록 이각의 심복이나 결코 폐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몰래 의논해 보시지요.”
라고 하였다.
이를 말하는 중에 마침 가후가 들어오자, 헌제가 좌우를 물리고 울먹이며 물었다.
“경이 한나라를 위하여 짐을 살려 줄 수 있겠소?”
가후가 몸을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것이 바로 신의 소원입니다.
폐하께서는 아무 말 마시고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신이 스스로 계책을 세우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헌제는 눈물을 거두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잠시 뒤 이각이 칼을 차고 들어오자, 황제는 겁에 질렸다.
이각이 말하기를,
“곽사가 신하답지 못하게 공경을 가둬 놓고 폐하까지 빼앗으려 합니다.
제가 없었더라면 폐하의 수레가 이미 잡혀갔을 것입니다.”
하니, 황제가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하였고, 이각은 밖으로 나갔다.

황보력의 의로운 간언과 이각의 분노
그때 황보력이 황제를 뵈러 들어왔다.
황제는 황보력이 말을 잘하고, 또 서량(西涼) 출신으로 이각과 동향임을 알았기에, 그를 양측에 보내 화해를 주선하게 했다.
황보력은 조명을 받들어 곽사의 군영으로 가서 곽사를 설득하자, 곽사는
“만약 이각이 황제를 내보낸다면 나도 공경들을 풀어주겠다.”
라고 했다.
황보력이 곧장 이각을 만나
“폐하께서 저를 서량 사람이라 하시며 공과 동향이니, 두 분을 화해시키라고 보내셨소.
곽사는 이미 조서를 받들겠노라 하였는데, 공의 생각은 어떠하시오?”
라고 묻자, 이각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포를 쳐부순 큰 공이 있고, 4년간 정사를 보좌하며 공훈을 세워 천하가 다 안다.
곽사 같은 말도둑이 감히 공경을 납치하고 나와 대적하니 맹세코 죽이지 않을 수 없다!
그대가 보기에도 내 계책과 병력이 곽사를 이기는 데 족하지 않단 말이오?”
라고 하였다.
황보력이 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 후예는 활쏘기를 믿고 재난을 대비하지 않다가 멸망했지요.
또 근래 동탁이 강대했으나, 여포가 은혜를 입고도 반역하여 단숨에 동탁의 머리가 국문(國門)에 매달렸습니다.
곧 강함만으론 믿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장군께서 이미 상장(上將)의 몸으로 부월(鉞)을 잡고 부절(符節)을 받았으며, 자손과 종친은 모두 높은 벼슬을 누리니, 결코 한실(漢室)의 은혜가 엷다고 할 순 없습니다.
지금 곽사는 공경을 위협하고, 장군은 황제를 협박하니, 누가 가볍고 누가 무겁겠습니까?”
이각이 크게 노하여 칼을 뽑으며 욕하기를,
“천자가 너를 시켜 내게 모욕을 주라는 것이냐?
우선 네 목부터 베겠다!”
하니, 기도위(騎都尉) 양봉이 나서서 간하였다.
“아직 곽사를 제거하지 못했는데 천자의 사자를 죽인다면, 곽사가 병사를 일으킬 명분을 얻어 제후들도 그를 거들 것입니다.”
가후도 거듭 말려 겨우 이각의 분노가 좀 누그러들었다.
가후가 황보력을 밀쳐내니, 황보력이 크게 외쳤다.
“이각은 조서를 받들지 않고 임금을 시해하여 스스로 서겠다는구나!”
시중 호막이 급히 막아서 말하기를,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지 마십시오. 자칫 목숨이 위험합니다.”
하자 황보력이 호통쳤다.
“호경재(胡敬才)! 그대도 조정의 신하이거늘, 어찌하여 역적에게 붙는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 법. 이각에게 죽는 것은 내 본분일 뿐이오!”
하며 크게 욕을 퍼붓다 그치지 않았다.
헌제가 이 사실을 알고 급히 황보력에게 서량으로 돌아가라 명령하였다.

군세의 이탈과 이각의 궁지
한편, 이각의 군사는 대부분 서량(西涼) 출신이며, 거기에 강족(羌) 병사들이 힘을 보태고 있었다.
황보력이 서량인들에게
“이각이 반역을 꾀하니,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역적당이 될 것이고 뒷날 화가 클 것이다”
라고 소문을 퍼뜨리니, 서량 출신 군사들은 점차 동요하고 흩어졌다.
이각은 황보력의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분노하여 호분(虎賁) 왕창을 시켜 추격케 했으나, 왕창은 황보력이 충의지사(忠義之士) 임을 알고 쫓지 않고 돌아와 “이미 행방을 찾을 수 없다”라고 보고했다.
가후도 몰래 강족에게,
“천자가 그대들의 충의와 오랜 전쟁 고생을 잘 아시어, 은밀히 조서를 내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을 내리셨소.
뒷날 후한 상이 있을 것이오.”
라고 일러두었다.
때마침 이각이 작위나 상을 내리지 않은 것을 원망하던 강족들은 가후의 말을 듣고 모두 고향으로 철수했다.

이각의 무분별한 보상, 양봉의 결행
가후는 다시 헌제에게,
“이각은 탐욕스럽고 계책도 없으니, 지금 군심이 흩어져 겁에 질려 있습니다.
큰 벼슬을 미끼로 달래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헌제가 조서를 내려 이각을 대사마(大司馬)에 봉하자, 이각은 크게 기뻐하며,
“이 모든 것이 무녀가 신을 불러 비는 덕분이로구나!”
라고 외치고 무녀만 크게 상을 내려 주었으며, 정작 전장에서 공을 세운 장수나 병사들은 등한시했다.
기도위 양봉이 이를 몹시 분개하여 송과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생사를 넘나들며 전쟁터를 누볐는데, 정작 공이 무녀만 못하다니!
차라리 이 역적을 죽이고 황제를 구하자!”
송과가 말하길
“그래, 왜 아니하는가?
내가 중군에서 불을 질러 신호하겠으니, 그때 그대가 밖에서 군사를 이끌고 들어오시오.”
라 답했다.
둘은 그날 밤 2경(二更)에 거사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기밀이 누설되어 이각이 미리 알아차렸고, 송과를 잡아 바로 죽여 버렸다.
양봉이 밖에서 대기했지만 약속된 봉화가 보이지 않았다.
이각이 직접 군사를 끌고 나와 양봉을 맞닥뜨려, 군영에서 새벽 4경(四更)까지 격렬히 싸웠다.
결국 양봉이 견디지 못하고 병사를 거느려 서안(西安)으로 물러갔다.
이 일 이후 이각의 군세는 한층 쇠약해졌다.
게다가 곽사가 계속 치고 들어오니, 이각의 군은 차츰 와해되어 갔다.

장제의 화해 제안과 헌제의 홍농 행차
이각의 군세가 점차 약해지는 와중에, 곽사가 늘 쳐들어와 사람을 많이 죽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와서 보고하기를,
“장제가 섬서(陝西)에서 대군을 거느리고 와, 두 분께 화해를 청하고 따르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합니다.”
하였다.
이각은 체면이라도 세우고자 먼저 사람을 보내 장제에게 “화해하겠다”라고 알렸고, 곽사도 마지못해 이를 승인했다.
장제는 상주문을 올려 헌제께 홍농(弘農)으로 행차하시라 청하였는데,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짐이 동도(東都)를 그리워한 지 오래였는데, 이번 기회에 돌아갈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로다!”
라고 했다.
헌제는 장제를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봉하였고, 장제는 곡식과 술, 고기를 넉넉히 내어 백관에게 공급했다.
곽사는 군영에 붙잡아 두었던 공경들을 풀어주었고, 이각은 수레를 정비해 동쪽으로 떠나면서 예전에 황실을 지키던 어림군(禦林軍) 수백 명에게 극(戟)을 들려 호송하게 했다.

황하를 건너는 헌제의 고초
황제의 거가가 신풍(新豐)을 지나 패릉(霸陵)에 이르렀는데, 가을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돌연 함성이 울려 수백 병사가 다리 위를 막고서, 거칠게 외쳤다.
“거기 오는 자는 누구냐?”
시중 양기가 말을 몰아 다리 위로 올라가 외치기를,
“성상의 수레가 지나가는데, 감히 막다니 무슨 짓이오!”
하니, 장수 두 명이 나와 말하기를,
“우리는 곽 장군의 명으로 이 다리를 지키며 간자를 막는 중이다.
만약 과연 황제의 수레라면, 황제의 모습을 직접 뵈어야 믿을 수 있소.”
그러자 양기가 수레의 주렴을 높이 들어 보였고, 헌제가 말씀하셨다.
“짐이 바로 여기 있거늘, 어찌 물러서지 않느냐?”
병사들이 모두 “만세!”를 외치며 양옆으로 물러서니, 마침내 황제의 수레가 지나갈 수 있었다.
두 장수가 곽사에게 돌아가,
“어가가 이미 떠났습니다.”
라고 보고하자, 곽사가 크게 화내며,
“장제를 속여 시간을 벌고는 황제를 다시 미오로 끌고 갈 셈이었는데, 너희가 제멋대로 통과시켰단 말이냐!”
하고는 그 두 장수를 참수하고 군사를 일으켜 추격해 왔다.
황제의 수레가 화음현(華陰縣)에 이르렀을 즈음, 뒤에서 함성이 귀청을 찢으며,
“어가를 멈춰라!”
라는 소리가 들렸다.
헌제가 울며 대신들에게,
“갓 이리의 굴에서 나왔더니, 다시 호랑이의 아가리에 들어가게 되었구나.
이를 어찌하리오?”
라고 하니, 모두가 낯빛을 잃었다.

양봉과 서황, 황제를 구하다
도적의 무리가 점점 다가오는데, 갑자기 북소리가 울리더니 산 뒤에서 한 장수가 나타났다.
깃발에 “대한(大漢) 양봉(楊奉)”이라 크게 쓰여 있고, 병력 천여 명을 거느려 달려들어 곽사의 군대를 쳐부쉈다.
이는 곧 이각에게 패한 뒤 종남산 아래에 주둔하던 양봉이, 황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보호하러 달려온 것이었다.
양봉이 즉시 진을 펼치니, 곽사의 장수 최용이 앞으로 나와,
“양봉이야말로 역적이다!”
라며 욕했다.
양봉이 대로하여 진중을 둘러보며,
“공명은 어디 있느냐?”
라고 부르자, 한 장수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붉은 갈기를 지닌 준마를 몰아 최용에게 직격 했다.
두 말이 마주치자 단 한 합 만에 최용이 목숨을 잃고 말 아래로 떨어졌다.
양봉이 그 기세로 곽사의 진영을 쓸어버리니, 곽사의 군대가 크게 패해 20여 리나 달아났다.
양봉이 군사를 거느리고 황제를 뵈니, 황제가 위로하며,
“경이 짐의 몸을 구했으니 그 공이 작지 않도다!”
라 칭찬했다.
양봉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자, 황제가 물었다.
“방금 적장을 벤 자는 누구인가?”
양봉이 그 장수를 데려와 어가 아래에 절을 올리게 하며,
“이 사람은 하동(河東) 양군(楊郡) 출신으로 성은 서(徐), 이름은 황(晃), 자는 공명(公明)이라 합니다.”
라고 소개하자, 황제가 노고를 치하했다.
양봉은 황제를 보호해 화음으로 갔고, 장군 단외가 의복과 음식 등을 바쳐 올렸다.
그날 밤 황제는 양봉의 진영에서 묵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