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왕후의 희생으로 군심을 다스리다
왕후(王垕)는 조조의 명을 따라 작은 되(斛, 곡식을 재는 단위)를 써서 군량을 배분하였다.
하지만 군중의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조조는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각 진영의 병사들의 동태를 엿보게 하였는데, 어느 곳 하나 불평과 원망이 없는 곳이 없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승상이 우리를 속였다!
군량을 줄이며 병사들을 속이는구나!”
조조는 곧 왕후를 은밀히 불러들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내가 너에게서 한 가지를 빌리고자 한다.
군심을 다스릴 일인데, 너는 결코 인색하지 말라.”
왕후가 조심스레 물었다.
“승상, 무엇을 빌리시려 하십니까?”
조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머리를 빌리려 할 뿐이다.”
왕후는 얼굴이 사색이 되며 놀라 말했다.
“저는 실로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조조는 담담히 말했다.
“나도 네가 무죄인 것을 안다.
그러나 지금 너를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군심이 흔들려 변란이 일어날 것이다.
네가 죽은 뒤에는 내가 네 가족을 책임지고 돌보겠다.
염려할 것 없다.”
왕후가 말을 더 하려 할 때, 조조는 이미 도부수(刀斧手)를 불러 왕후를 끌어내게 하였다.
성문 밖에서 곧바로 참수하였다.
왕후의 머리는 높은 장대에 걸려 삼군이 모두 보도록 하였다.
조조는 포고문을 내렸다.
“왕후는 작은 되를 임의로 사용하고 군량을 도적질 하였기에 군법에 따라 참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군중은 즉시 퍼지던 원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병사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말했다.
“군율이 이토록 엄하구나.”
조조, 호령으로 성을 깨뜨리고 전투를 거두다
다음 날, 조조는 모든 군영의 장수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삼일 안에 성을 깨뜨리지 못하면, 장수든 병사든 모두 참하겠다!”
조조는 스스로 성 아래로 내려가 군사들을 독려하며 흙과 돌을 운반하여 해자(城壕)를 메우고 도랑(塹)을 막게 하였다.
성 위에서는 화살과 돌을 비처럼 쏟아부었으나 조조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두 명의 비장(裨將, 부장급 장수)이 겁을 먹고 슬그머니 퇴각하였다.
조조는 바로 검을 뽑아 두 사람을 성 아래에서 베어버렸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직접 흙지게를 지고 해자를 메우기 시작했다.
이를 본 장수와 병사들은 크게 감복하였다.
“승상께서도 몸소 저렇게 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물러설 수 있겠는가!”
이에 장졸들이 앞다투어 전진하였다.
조조 군의 위세는 크게 올라 성 안의 군사들이 도저히 대적하지 못하고 조조의 군대는 앞다투어 성벽을 넘었다.
성문을 부수고 쇠사슬을 끊고 대군이 물밀 듯이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결국 이풍, 진기, 악취, 양강 등이 모두 생포되었다.
조조는 명하여 이들을 모두 저잣거리에서 참형에 처하였다.
조조는 원술이 꾸며지어 놓은 거짓 궁궐과 전각, 일체의 금지된 사치품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수춘성(壽春城) 안의 재물은 모조리 수거하여 텅 비게 만들었다.
장수들과 다시 상의할 때, 조조는 바로 회수를 건너 원술을 추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순욱이 조용히 간언 했다.
“근래 몇 해 동안 가뭄이 심하여 군량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지금 만약 다시 군을 일으키면 군사는 지치고 백성은 고통받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잠시 허도로 돌아가 내년 봄 밀농사가 익어 군량이 충분해진 뒤에 다시 도모하심이 옳습니다.”
조조는 잠시 침묵하였다.
조조, 호랑이를 기다리는 함정을 파다
조조는 잠시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급보가 말 위에서 날아들었다.
“장수가 유표를 의지하여 다시 남양(南陽)과 강릉(江陵) 여러 군현에서 난동을 부리고, 이미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조홍장군이 연달아 여러 번 패하여 지금 급히 구원을 요청합니다.”
조조는 곧바로 서신을 써 손책에게 보냈다.
“즉시 장강(長江)을 건너 진영을 설치하고 유표에게 위협이 되도록 하라.
그러면 유표가 감히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조조는 그날로 군사를 거두어 잠시 철수하기로 하였다.
다시 군중에서 명령을 내렸다.
“유현덕은 그대로 소패(小沛)에 주둔하여 여포와 형제의 의를 맺고 서로 구원하도록 하라.
서로 침범하지 말지니라.”
유비는 명을 따르고, 여포도 군사를 거느리고 서주(徐州)로 돌아갔다.
조조는 이별하기 전, 유비를 조용히 불러 귀띔했다.
“내가 그대를 소패에 주둔하게 한 것은 실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파놓은 것이라네.
그대는 반드시 진규 부자와 잘 의논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나는 반드시 밖에서 그대를 도울 것이오.”
조조는 이렇게 유비에게 속뜻을 털어놓고 이별하였다.
조조, 장안을 정돈하고 다시 장수를 정벌하다
한편, 조조는 군사를 거느리고 허도(許都)로 돌아왔다.
이때 급보가 올라왔다.
“단외가 이각을 참하고, 오습이 곽사를 베었으며, 두 사람의 머리를 가져와 바치려 합니다.”
조조는 크게 놀라면서도 기뻐하였다.
단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각의 온 집안, 노소 남녀 200여 명을 모두 사로잡아 허도로 압송하였다.
조조는 즉시 명하여 그들을 각각 허도의 사방 성문 앞에서 처형하게 하고, 목을 베어 높은 장대에 내걸게 하였다.
그리고 포고문을 붙여 천하에 널리 알렸다.
이를 본 백성들은 거리마다 모여 환호하며 말했다.
“통쾌하도다!”
곧이어 황제는 황궁에 올라 문무백관을 소집하고 ‘태평연(太平筵宴)’이라 이름 붙인 큰 연회를 베풀었다.
그리고 공을 세운 단외를 탕구장군(蕩寇將軍), 오습을 진로장군(殄虜將軍)으로 봉하고 각각 군사를 이끌고 장안(長安)을 수비하게 하였다.
두 사람은 황제에게 사은 인사를 드린 뒤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다.
조조는 그 길로 천자에게 아뢰었다.
“장수가 남양(南陽)에서 다시 난을 일으켰으니 속히 군사를 일으켜 토벌해야 합니다.”
천자는 이를 허락하며, 친히 황제가 타는 의장(儀仗)과 장식이 갖추어진 수레를 준비하고 조조의 출정을 전송하였다.
이때가 건안 3년(建安三年) 여름 4월이었다.
조조, 군율로 민심을 얻다
조조는 허도(許都)에 순욱을 남겨 병사와 장수들을 지휘하게 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행군 도중, 조조는 길가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온 길목마다 밀이 이미 알차게 익어 수확을 앞두고 있었지만, 백성들이 조조 군의 출병 소식을 듣고 겁에 질려 피난하여 감히 밀이 익었음에도 수확을 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본 조조는 즉시 사람을 시켜 원근의 모든 마을과 촌락, 그리고 곳곳의 수비 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조조의 포고문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반역을 토벌하고 백성을 보호하고자 출정한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하필이면 지금이 밀 익은 시기에 군을 일으켰지만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고자 함이 아니니 놀라지 말라.
크고 작은 장수와 병사들 모두 명심하라.
무릇 이 밭을 지날 때 밭을 밟은 자는 장수든 병사든 즉시 목을 베어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군법이 매우 엄중하니 백성들은 부디 놀라지 말라.”
이 포고문을 들은 백성들은 집집마다 서로 전하며 감탄하고 기뻐하였다.
“아, 승상이 군율로써 백성을 사랑하는구나!”
백성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조조의 군대가 오는 길목에 나와 절하며 조조 군을 맞이했다.
조조 군은 그 뒤로 밀밭을 지나게 될 때마다 모든 장병이 말에서 내려 손으로 밀을 붙들고 한 줄, 한 줄 조심스럽게 밭을 밟지 않도록 서로 인계하여 지나갔다.
조조, 밀밭 사건 — 법 앞에 군주도 예외 없다
조조는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밭 속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깜짝 놀라 날아올랐다.
조조의 말도 그 광경에 놀라 눈을 부릅뜨고 곧장 밀밭 속으로 달려 들었다.
순식간에 넓은 밀밭이 말발굽에 짓밟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조조는 즉시 행군주부를 불러 말했다.
“내가 스스로 군법을 세워 밀밭을 밟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고 하였는데, 나 자신이 이를 범했다.
법에 따라 내 죄를 의논하라.”
행군주부가 놀라 말했다.
“승상께서 어찌 스스로 죄를 논하십니까?
천하의 승상이신데 군율을 어찌 몸소 적용하시겠습니까?”
조조는 무섭게 응수했다.
“내가 스스로 법을 정했으면서, 스스로 어긴다면 어찌 삼군이 법을 믿고 따르겠는가?”
조조는 곧 검을 뽑아 자결하려 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장수와 군사들이 깜짝 놀라 달려와 조조를 막았다.
곽가가 급히 나섰다.
“옛 《춘추》의 의리에 따르면 법은 존귀한 자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승상께서는 천자의 명을 받고 대군을 지휘하는 분이니 어찌 스스로 죽으시겠습니까?”
조조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마침내 말했다.
“《춘추》에 그런 말이 있다면 오늘만은 목숨을 면하겠다.”
조조는 그대로 검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땅에 던지며 말했다.
“머리카락을 잘라 목숨을 대신하노라.”
그리고 명하여 군사들에게 잘린 머리카락을 삼군에 돌려 보여주며 포고하였다.
“나는 스스로 정한 법을 스스로 어겼다.
본래라면 목을 베어야 하지만, 《춘추》의 의리를 따라 머리카락을 잘라 그 대신한다.”
삼군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몸서리치며 조조의 군율을 다시는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모두들 “승상이 법을 스스로 어기지 않는구나.”
하며 두려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날 이후 조조 군에서는 누구도 군율을 어기는 자가 없었다
후세 사람의 시
후세 사람이 이 사건을 평하여 시를 지어 말하였다.
사나운 병사 십만이 있으면, 그 마음도 십만 가지라.
그 많은 마음을 한 사람이 호령하여 다스리기란 어려운 일이로다.
조조가 칼을 뽑아 머리카락을 잘라, 목숨 대신 삼으니
이제야 알겠구나, 조조의 술책이 깊고도 깊음을.
장수, 가후의 묘책으로 조조를 맞이하다
한편, 장수는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자, 급히 서신을 써 유표에게 보내 후방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군을 정비하여 뇌서와 장선 두 장수를 거느리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서 조조를 맞으러 나갔다.
양군이 평지에 진을 치고 포진하였다.
장수는 먼저 말을 타고 진영 밖으로 나왔다.
그는 조조를 가리키며 크게 꾸짖었다.
“네 놈, 거짓으로 인의(仁義)를 행하고, 염치도 없는 자여!
짐승과 무엇이 다르더냐!”
조조는 크게 노하여 곧바로 허저를 불러 말했다.
“이 무례한 자를 꾸짖어라!”
장수는 곧바로 장선으로 하여금 맞서게 했다.
그러나 허저는 세 합도 넘기지 않고 장선을 말 아래에서 베어버렸다.
장수의 군대는 크게 패배하여 성으로 달아났다.
조조는 군을 이끌고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남양성(南陽城) 아래에 이르렀다.
장수는 황급히 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조조는 즉시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막상 성을 자세히 살펴보니, 성의 해자가 너무 깊고 넓으며 물살도 세어 급히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조조는 군사들에게 명령하였다.
“흙을 실어 나르고, 돌을 날라 해자를 메우라.”
또한 흙자루와 땔감을 섞어 성곽 아래에 사다리와 디딤판을 만들고, 높은 운제(雲梯)를 세워 성 안을 엿보았다.
조조는 말에 올라 사흘 동안 직접 성을 돌며 지형을 살피고, 서문(西門) 모퉁이에 병사들에게 장작을 높이 쌓게 하였다.
그리고 여러 장수를 모아 이렇게 명령했다.
“여기서 성을 넘을 것이다.”
성 안에서는 이 모든 광경을 가후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가후는 장수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조조의 의도를 꿰뚫었소.
지금이야말로 그 계략을 거꾸로 써야 할 때요.”
바로 이것이
속임수에는 속임수로 대응하는
장계취계(將計就計)의 시작이었다.
바로 이 말이 있듯이,
‘강한 자 위에는 반드시 더 강한 자가 있고,
속임수를 쓰는 자는 결국 그 꾀를 꿰뚫어 보는 자를 만나게 되는 법이다.’
과연 가후의 계책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다음 이야기를 듣고서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