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九回
下邳城 曹操 鏖兵 白門樓 呂布 殞命
하비성 조조 아병 백문루 여포 운명
하비성에서 조조가 맹렬히 싸우고 백문루에서 여포가 목숨을 잃다
장수의 도리, 군주의 고뇌
말하자면, 고순은 장요를 거느리고 관우의 진영을 공격하였고, 여포는 친히 나서서 장비의 진지를 습격하였다.
관우와 장비는 각각 진영에서 나와 적을 맞아 싸웠고, 현덕(유비)은 두 길로 군을 나누어 그들을 구원하고자 나섰다.
그때 여포가 기병을 분산시켜 뒤쪽에서 급습하니, 관우와 장비의 양군은 큰 패전을 면치 못하고 무너져 흩어졌다.
현덕은 겨우 수십 기의 병사를 이끌고 혼신을 다해 패성(沛城)으로 달려 돌아왔다.
여포는 곧바로 그 뒤를 따라가며 맹렬히 추격하였다.
이에 현덕은 급히 성 위에 있는 군사들에게 외쳐 말하기를,
"적교(吊橋)를 내려라!" 하였다.
그러나 여포 또한 곧 도착하였으므로 성 위의 수비병들은 활을 쏘려다 자칫 현덕을 맞힐까 두려워 감히 쏘지 못하였다.
그 틈을 타 여포가 형세를 몰아 성문 안으로 돌진하자, 문을 지키던 장졸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여포는 병사들을 불러 성안으로 진입하였다.
현덕은 그제야 형세가 절박함을 깨달았으나, 이미 집으로 향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처자식을 버리고, 성 안을 뚫고 곧장 서문으로 빠져나가, 오직 한 필 말에 몸을 맡긴 채로 목숨을 건 도주에 나섰다.
은혜를 잊지 않은 자, 용서를 베푼 자
여포가 현덕의 집에 급히 당도하니, 미축이 나와 영접하며 여포에게 아뢰었다.
“소인은 듣건대, 대장부란 남의 처자를 해치지 않는 법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장군과 천하를 두고 다툴 자는 오직 조공(조조) 한 사람뿐이옵니다.
우리 현덕은 늘 그 옛날 원문(轅門)에서 장군께서 화극(戟)을 쏘아 위기를 구해주신 은혜를 깊이 새기고 있사오며, 감히 장군을 배반하려 한 적이 없습니다.
부득이하여 조공에게 의탁하게 된 것일 뿐이오니, 바라건대 장군께서 이 사정을 너그러이 살펴주시옵소서.”
이에 여포가 말하였다.
“내가 현덕과는 오랜 사귐이 있는 사이요.
어찌 차마 그의 처자식을 해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곧 미축에게 명하여 현덕의 처자와 아이들을 인도하여 서주(徐州)로 가서 평안히 머물도록 하였다.
여포는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산동(山東)의 연주(兗州) 경계로 향하였으며, 고순과 장요를 남겨 소패(小沛)를 수비하게 하였다.
이때 손건은 이미 성 밖으로 도망쳐 나가 있었고, 관우와 장비 두 사람도 각기 병사들을 조금씩 수습하여 산중에 거처를 정하고 은거하였다.
역경 속의 은신처, 충절이 깃든 한 끼
그런즉 말하건대, 현덕(유비)은 한 필 말에 몸을 의탁하여 난리를 피해 달아나던 중이었다.
길을 가던 와중, 뒤에서 누군가 급히 따라오는 자가 있어 돌아보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손건이었다.
현덕이 말하였다.
“지금 나의 두 아우가 생사를 알 수 없고, 처자 또한 뿔뿔이 흩어졌으니,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는가?”
손건이 대답하였다.
“차라리 우선 조조에게 의탁하여 훗날을 도모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현덕은 그 말을 따르기로 하고, 인적 드문 오솔길을 따라 허도(許都)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도중에 양식이 떨어져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시골 마을을 찾아 다니며 음식을 구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는 곳마다 ‘유 예주(劉豫州)께서 오셨다’는 말이 퍼지자, 백성들이 앞다투어 음식을 바치고 대접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하루는 한 가옥에 묵게 되었는데, 그 집의 젊은이가 나와 예를 올리기에 이름을 물으니, 그는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 자, 이름은 유안이라 하였다.
그날 저녁, 유안은 유 예주께서 오신 것을 알고, 야생 짐승을 사냥하여 진귀한 고기로 대접하려 하였으나, 때마침 수확이 없어 짐승을 잡지 못하였다.
이에 차마 빈 손으로 대접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기 아내를 죽여 그 고기를 음식으로 올렸다.
현덕이 식사 도중에 묻기를,
“이 고기는 어느 짐승의 고기인가?”
하니, 유안이 대답하였다.
“늑대의 고기입니다.”
현덕은 의심치 않고, 배불리 먹고 하루 밤을 그 집에서 쉬어갔다.
찢긴 심장, 뜨거운 눈물
이윽고 새벽이 되어 떠날 즈음, 유비는 후원으로 가서 말을 찾고자 하였다.
그런데 부엌 아래에서 뜻밖에도 한 부인이 살해되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팔뚝의 살은 이미 모두 베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현덕은 크게 놀라 즉시 물었고, 그제서야 어젯밤 자신이 먹은 고기가 바로 그 부인의 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부인은 다름 아닌 사냥꾼 유안의 아내였던 것이다.
현덕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말에 올랐다.
그때 유안이 나와 절을 하며 아뢰기를,
“원래는 사군을 따라 멀리 가고 싶었사오나, 늙으신 어머니께서 집안에 계시기에 감히 멀리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현덕은 깊이 감사하고 고개 숙여 작별 인사를 고하며, 길을 재촉하여 양성(梁城)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중, 문득 먼지 바람이 해를 가릴 만큼 일더니, 한 무리의 대군이 앞을 막아서 왔다.
현덕은 그것이 조조의 군대임을 알아차리고, 손건과 함께 곧장 중군의 깃발 아래로 나아가 조조와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비는 조조에게 소패성(沛城)을 잃은 일과 두 아우와 뿔뿔이 흩어진 사정, 그리고 처자식이 적진에 떨어진 사연까지 낱낱이 고하였다.
조조 또한 이 말을 듣고서 눈물을 떨구었다.
유비는 이어서 사냥꾼 유안이 아내를 죽여 식량으로 바친 사연까지 전하였다.
조조는 그 말을 듣고 감탄한 나머지, 손건에게 금 백 냥을 내어 유안에게 하사하도록 명하였다.
조조의 진군, 태산의 검은 구름을 뚫다
조조의 군대가 제북(濟北)에 이르렀을 때, 하후연 등이 나와 진영으로 맞아들였다.
그는 곧 조조에게 전하길,
“형 하후돈께서 전투 중 한쪽 눈을 잃고 중상을 입은 채 병상에 누워 아직 쾌차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조는 하후돈의 누운 곳으로 친히 가서 병세를 살핀 뒤, 먼저 허도(許都)로 돌려보내 요양케 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자를 보내어 여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를 탐문케 하였다.
탐마가 급히 돌아와 보고하기를,
“여포는 진궁과 장패와 더불어 태산(泰山)의 도적들과 연합하여, 연주(兗州)의 여러 군현을 함께 공격하고 있습니다.”
조조는 이 보고를 듣자마자, 즉시 조인에게 정병 삼천을 내어 소패성(沛城)을 치게 하였고, 자신은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현덕과 함께 여포를 정벌하기 위해 출전하였다.
군대가 산동(山東)에 이르렀을 즈음, 길이 소관(蕭關) 가까이 접어들자, 태산의 도적 손관, 오돈, 윤례, 창희 등이 삼만 여 병력을 이끌고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조조는 허저에게 명하여 적을 맞아 싸우게 하니, 도적들의 장수 넷이 일제히 말을 타고 출전하였다.
허저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목숨 걸고 싸우니, 네 장수는 감당하지 못하고 저마다 패퇴하였다.
조조는 이 기세를 몰아 진격하며 무너진 적을 추격하여 소관(蕭關)까지 밀어붙였다.
이 소식은 곧 탐마에 의해 여포에게 긴급히 보고되었다.
충언인가 책략인가
이 무렵 여포는 이미 서주(徐州)로 돌아온 상태였고, 진등과 함께 소패(小沛)를 구원하러 나가고자 하였다.
이에 진등의 부친인 진규를 남겨 서주의 수비를 맡기려 하였다.
진등이 길을 떠나기 직전, 진규가 그를 불러 말하였다.
“예전 조공(조조)께서 이르시길, 동방의 모든 일은 그대에게 맡기노라 하셨다.
지금 여포는 패망이 임박했으니, 이제야말로 기회를 도모할 때이다.”
이에 진등이 답하였다.
“바깥의 일은 아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만일 여포가 패하여 되돌아온다면, 부친께서는 미축과 함께 성을 지키시고, 그가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아들은 빠져나갈 방책을 갖추고 있습니다.”
진규가 다시 말하였다.
“그러나 여포의 처자식이 성 안에 있고, 그 측근들도 제법 많거늘, 어찌하면 좋겠는가?”
진등이 대답하였다.
“그 점 또한 염려 마십시오. 아들에게도 그에 맞는 계책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진등은 여포를 찾아가 아뢰었다.
“지금 서주는 사방이 적의 포위에 놓여 있고, 조조는 반드시 맹공을 퍼부을 것입니다.
신이 미리 대비책을 강구해 보건대, 재물과 양식을 하비성(下邳)으로 옮겨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일 서주가 포위된다 해도 하비에 양식이 있으면 구제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 미리 대비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여포는 말하였다.
“원룡(진등의 자)의 말이 지극히 옳도다.
내가 마땅히 처자와 함께 옮겨야겠구나.”
그리하여 즉시 송헌과 위속에게 명하여, 처자식과 금전 및 군량을 호위하여 하비성으로 옮기게 하였다.
그리고 여포 자신은 병사를 이끌고 진등과 함께 소관(蕭關)을 구원하러 나섰다.
길을 반쯤 가다가, 진등이 나서서 말하였다.
“신이 먼저 소관에 도착하여 조조의 병세가 허실이 어떠한지 정탐하겠사오니, 주공께서는 그 후에 출병하심이 좋겠습니다.”
이에 여포가 이를 허락하니, 진등은 홀로 먼저 소관으로 떠나갔다.
불꽃은 내통의 신호, 어둠 속의 배신
진궁 등이 진등을 맞아 접견하니, 진등이 말하였다.
“온후(여포)께서 공들께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에 심히 분노하시며, 친히 문책하러 오신다 하셨습니다.”
진궁이 말하였다.
“지금 조조의 군세는 막강하여 경솔히 맞서 싸울 수 없소.
우리들은 관문을 굳게 지키고, 주공께는 소패성(沛城)을 확고히 지키도록 권하는 것이 최상의 계책이라 생각하오.”
진등은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며 겉으로는 순종하였다.
그날 저녁, 진등은 관루에 올라 내려다보니 조조의 병세가 이미 관문 아래에 이르렀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야음을 틈타 서신 세 통을 써서 화살에 묶고, 관 아래 조조 진영으로 쏘아보냈다.
이튿날, 진궁과 작별한 후, 진등은 날랜 말을 몰아 여포를 찾아가 말하였다.
“관문을 지키던 손관등 도적들이 모두 관문을 조조에게 바치려 합니다.
신은 진궁을 남겨 지키게 해두었으니, 장군께서는 오늘 황혼 무렵에 출병하시어 구원하시면 되옵니다.”
여포가 말하였다.
“경이 아니었더라면 이 관문은 이미 잃었을 것이오!”
곧 진등에게 명하여 먼저 기병을 이끌고 관문으로 가게 하고, 진궁과 내응 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 신호는 불을 올리는 것으로 하였다.
진등은 곧장 가서 진궁에게 고하였다.
“조조의 병력이 좁은 오솔길을 따라 이미 관문 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서주가 위태로우니, 공들께서는 어서 돌아가시지요.”
진궁은 이를 믿고 군중을 이끌고 관문을 버리고 퇴각하였다.
그제야 진등은 관루에 올라 불을 올렸고, 여포는 그 불빛을 신호 삼아 야음을 틈타 군사를 이끌고 관문으로 들이닥쳤다.
하지만 관문 안은 이미 어지러워져 있었고, 진궁의 군사와 여포의 군사들이 암흑 속에서 서로를 분간하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엉켜 싸웠다.
문은 닫히고, 여포 돌아갈 곳을 잃다
조조의 군사들이 불신호(號火)를 보자마자 일제히 돌진하여 공격을 가하였다.
손관 등의 군세는 감당하지 못하고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하였다.
여포는 그 기세를 몰아 날이 밝을 때까지 맹렬히 돌진하였다.
그러나 천명이 되어 비로소 이 모든 것이 계책이었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급히 진궁과 함께 서주(徐州)로 되돌아갔다.
서주의 성곽 근처에 이르러 성문을 열라 외치자, 성 위에서는 어지럽게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망루 위에 선 미축이 소리쳐 꾸짖기를,
“그대는 우리 주군의 성지를 강탈하였으니, 이제 이 성은 마땅히 다시 우리 주군께 돌려야 할 것이오.
그대는 이 성에 다시는 들어올 수 없소이다!”
여포는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외치기를,
“진규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자 미축이 응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그를 처단하였노라.”
여포는 고개를 돌려 진궁에게 묻기를,
“진등은 어디에 있는가?”
진궁이 냉소하며 답하였다.
“장군께서 아직도 미혹되어 그 간사한 자를 찾으십니까?”
이에 여포는 군중에 명하여 두루 찾아보게 하였으나, 진등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궁은 이를 보고 여포에게 간언 하였다.
“서둘러 소패(小沛)로 몸을 피하심이 좋습니다.”
여포가 이를 따랐다.
길을 반쯤 가던 중, 갑자기 한 무리의 군사가 세차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살펴보니, 다름 아닌 고순과 장요의 군대였다.
거짓말의 끈에 끌려, 여포 다시 소패로 달리다
여포가 묻기를,
“무슨 일로 그대들이 여기에 왔는가?”
고순과 장요는 대답하였다.
“진등이 와서 말하기를, 주공께서 포위되셨다 하여 저희더러 급히 구원하라 명하셨습니다.”
진궁이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또한 간사한 자의 꾀일 뿐이오!”
여포는 크게 노하여 외쳤다.
“내가 반드시 이 배은망덕한 자를 죽이겠다!”
그리하여 분노에 사로잡혀 급히 말을 몰아 소패(小沛)로 달려갔다.
그러나 성곽 아래에 이르러 보니, 소패성 성 위에는 이미 조조의 깃발로 가득히 휘날리고 있었다.
이는 조조가 조인에게 명하여 기습하게 하여, 이미 성을 점령한 상태였고, 병사들을 이끌고 지키게 하였던 것이다.
여포는 성 아래에서 진등을 향해 고함을 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진등은 성 위에서 손가락질하며 여포에게 욕을 되받아쳤다.
“나는 한나라의 신하이거늘, 어찌 감히 너 같은 반역자를 섬기겠느냐!”
여포는 이를 듣고 노기가 극에 달하여, 곧바로 성을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뒤편에서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고, 한 무리의 군대가 달려와 다가왔다.
그 선두에 선 장수는 장비였다.
이에 고순이 말을 타고 나아가 맞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여포는 친히 말을 몰아 전장에 나서 싸웠다.
그러나 아직 승부가 나지 않은 그 찰나, 진 외에서 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조조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돌격해 온 것이다.
관우의 칼날, 조조의 포위망
여포는 더 이상 적을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병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조조의 군사들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였다.
여포는 도망치던 중 사람도 말도 모두 지쳐 탈진하였고, 그때 갑자기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 선두에 선 장수는 말을 세우고 칼을 옆으로 들고서,
크게 외치기를:
“여포야, 달아나지 마라! 관운장이 여기 있다!”
여포는 크게 놀라 황급히 맞서 싸웠다.
그때 뒤편에서 장비가 달려와 협공하였다.
여포는 이미 싸울 의지가 없었고, 진궁 등과 함께 겨우 길을 열고 하비성(下邳)을 향해 도망쳤다.
후성(侯成)이 군사를 이끌고 나와 그를 맞이하며 구원하였다.
그 시각, 관우와 장비가 마주하게 되자, 두 사람은 서로 뜨겁게 눈물을 흘리며, 그간 흩어졌던 사연을 나누었다.
관운장이 말하였다.
“나는 해주(海州)로 가는 길목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장군의 소식을 듣고 이리로 달려왔소.”
이에 장비가 대답하였다.
“나는 망당산(芒碭山) 근처에 머물러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이 얼마나 다행이오.”
눈물의 재회, 권력의 잔치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눈물 어린 재회의 이야기를 마치고 병사들을 이끌고 함께 현덕(유비)에게 나아가 통곡하며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현덕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여 가슴이 북받쳐 올랐고, 두 아우를 데리고 조조에게 인도하여 함께 조조를 따라 서주(徐州)로 들어갔다.
서주에서는 미축이 나와 맞이하였고,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하니 현덕은 매우 기뻐하였다.
이윽고 진규 부자도 조조를 찾아와 절하며 인사드렸다.
조조는 큰 연회를 베풀어 공로를 세운 장수들을 위로하고 치하하였다.
그는 스스로 연회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진규를 우측에, 현덕을 좌측에 앉게 하였다.
기타 장수들은 각각의 공훈과 직위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연회가 끝난 후,
조조는 진규 부자의 공로를 크게 찬양하며 열 개 현(縣)의 봉록을 더하여 하사하였고, 진등을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조조는 마침내 서주를 얻은 기쁨을 누리며 속으로 큰 환희를 품었다.
이후 그는 중신들과 함께 하비성(下邳)을 공격할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에 정욱이 나서 말하였다.
“지금 여포는 오직 하비성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으니, 만일 우리가 그를 지나치게 급하게 몰아붙인다면, 그는 죽기를 각오하여 싸울 것이며, 곧바로 원술에게로 달아날 것입니다.
여포와 원술이 연합하게 되면 그 세력을 깨뜨리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지모 있는 인물을 보내어 회남의 좁은 길목을 지키게 하여 안으로는 여포의 도주를 막고, 바깥으로는 원술의 원병에 대비함이 좋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산동(山東) 땅에는 장패, 손관 등의 무리들이 아직 귀순하지 않았으니 이들 또한 간과해서는 아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