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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제19회 백문종말(2)

by 장만리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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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종말(白門終末) : 백문루에서 맞이한 여포의 최후

망국의 길 – 하비성에서 구원의 손길을 구하다

 

조조가 말하였다.
"내가 스스로 산동(山東) 여러 길을 맡겠다.
회남(淮南)의 좁은 통로는 현덕(유비)께 맡기고자 한다."

이에 현덕이 정중히 아뢰었다.
"승상께서 명하셨으니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이튿날, 현덕은 미축간옹을 서주(徐州)에 남겨두고, 손건, 관우, 장비를 거느려 군사를 이끌고 회남의 길목을 지켰다.
조조는 친히 대군을 이끌고 하비성(下邳城)을 공격하였다.
한편, 여포는 하비성에 웅거 하여 양식은 넉넉하고, 사수(泗水)의 험한 물줄기를 믿고 있었으므로 성 안에 가만히 앉아 지키기만 하면 무탈하리라 여겨 아무 걱정이 없었다.

 

이에 진궁이 간하였다.
"지금 조조 군이 갓 도착하여 진영과 참호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편한 군사로 피곤한 군사를 쳐부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포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패했으니 경솔히 출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공격해 오면 사수에 빠뜨려 대파할 수 있을 것이오."

결국 여포는 진궁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기이한 계책으로 싸움을 준비하다

 

며칠 뒤, 조조의 군영이 완전히 자리 잡자
조조는 여러 장수를 이끌고 성 아래로 와서 크게 외쳐 여포를 불렀다.

여포가 성 위에 올라서자 조조가 말하였다.
"듣자니 봉선(여포)이 또 원술과 혼인하려 한다기에 군을 이끌고 왔소.
원술은 반역의 죄를 범한 자이나, 그대는 동탁을 토벌한 공이 있는 이라.

어찌하여 스스로 공을 버리고 역적을 따르려 하시오?
성이 한 번 무너지면 후회해도 늦을 것이오.
만약 일찍 항복하여 함께 왕실을 도우면, 제후의 자리 또한 잃지 않을 것이오."

여포가 대답하였다.
"승상께서 부디 물러나 주시면 의논해 보겠소."

 

이때 진궁이 여포 옆에서 조조를 향해 간사한 역적이라 욕하며 화살을 쏘아 조조의 대장기 덮개를 맞추었다.

조조가 노하여 외치기를
"내가 맹세코 너를 죽이겠다!"
하고 군사를 이끌고 성을 맹렬히 공격하였다.

진궁은 여포에게 간언 하였다.
"조조는 멀리서 왔으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보병과 기병을 거느려 성 밖에 나가 진을 치고, 나는 나머지 무리로 성 안을 지키겠습니다.
조조가 장군을 치면 나는 병사를 이끌고 그의 뒤를 공격하고, 조조가 성을 공격하면 장군께서 뒤에서 구원하면 됩니다.
열흘 안에 조조의 군량이 다할 터이니 북소리 한 번에 깨뜨릴 수 있습니다."

여포는 크게 수긍하여 즉시 무장을 정비하였다.
때마침 한겨울이었으므로 하인들에게 명하여 솜옷을 넉넉히 준비하게 하였다.

 

만리 길 이별의 시름

 

여포의 아내 엄씨가 이를 듣고 나와 물었다.
"장군께서 어디를 가십니까?"

여포가 진궁의 계책을 알리자 엄씨가 눈물을 흘리며 간하였다.
"성 전체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처자식을 버리고, 외로운 군사가 되어 멀리 나갔다가 만약 하루아침에 변고라도 생기면, 어찌 제가 장군의 아내로 남겠습니까?"

여포는 이를 듣고 주저하며 사흘을 나가지 못하였다.

진궁이 찾아와 재촉하며 말하였다.
"조조 군이 사방을 포위했습니다. 어서 나가지 않으면 반드시 곤란을 겪게 됩니다."

여포가 대답하였다.
"내가 생각해 보니, 나서는 것보다 굳건히 지키는 것이 낫겠소."

그러자 진궁이 다시 간하였다.
"들으니 조조 군은 양식이 부족하여 허도에 군량을 가지러 보냈습니다.
정예병을 이끌고 가서 그 양도를 끊어야 합니다. 

이 계책은 정말 훌륭합니다."

여포가 이에 수긍하여 다시 엄 씨에게 고하였다.

엄 씨가 울면서 말하였다.
"장군께서 나가시면, 진궁고순이 어찌 성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장안에서 장군께 버림받았으나, 방서의 은혜로 다시 만났건만 이제 또 저를 버리시렵니까? 

장군께서 만리길을 떠나시려거든 저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 통곡하였다.

 

여포, 모사들의 계책을 듣다

 

여포는 더욱 괴로워하며 결단하지 못하였다.

초선에게도 이를 고하니, 초선 역시 간곡히 부탁하였다.
"장군께서 제 주인이시니, 부디 가볍게 스스로 몸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포는 웃으며 답하였다.
"걱정 마라. 내게는 화극과 적토마가 있으니, 누가 감히 내게 가까이 오겠느냐!"

그러나 결국 여포는
"조조의 군량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거짓이다. 조조는 꾀가 많다."
하며 출진을 포기하였다.

진궁이 탄식하며 떠났다.
"우리는 죽어도 묻힐 땅조차 없겠구나…!"

이후 여포는 성 안에서 종일 나오지 않고, 엄 씨와 초선과 술을 마시며 시름을 달랬다.

이때 모사 허사왕해가 여포를 찾아와 계책을 아뢰었다.
"지금 원술은 회남에서 성세가 대단합니다.
장군께서 예전에 원술과 혼약하셨던 바,
지금 다시 구원을 요청하시면 내외에서 협공하여 조조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여포는 이 계책을 따랐다.
즉시 서신을 써서 허사와 왕해에게 들려 보내고자 하였다.

허사가 말하였다.
"반드시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어 탈출로를 열어주어야 합니다."

이에 여포는 장요학맹에게 1천 병력을 주어 골짜기 입구까지 호위하게 하였다.

 

궤멸로 가는 길

 

그리하여, 허사왕해는 밤 이슥한 이경(二更, 밤 9시~11시)에 성문을 나섰다.
장요가 앞서고, 학맹이 후위를 맡아 허사와 왕해를 보호하며 탈출하였다.
그들은 현덕(유비)의 진영을 스쳐 지나갔으나 유비 군사들은 미처 쫓아오지 못했고, 허사 일행은 곧바로 골짜기 입구를 빠져나갔다.

학맹은 5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허사와 왕해를 호위하여 길을 나섰다.

장요는 절반의 병력을 이끌고 다시 하비성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골짜기 입구에 이르자 관우가 길을 막고 있었다.
아직 칼을 부딪히기도 전에 고순이 성 안에서 병력을 이끌고 나와 장요를 구출하였다.
그리하여 장요는 무사히 성 안으로 돌아갔다.

한편, 허사와 왕해는 수춘(壽春)에 이르러 원술을 찾아가 서신을 바쳤다.

원술이 차가운 표정으로 이르기를
"예전에는 내 사신을 죽이고, 혼인을 거절하더니, 지금에 와서 또 구원을 요청하는가?"

허사가 서둘러 변명하였다.
"그것은 조조의 간계에 속은 탓입니다.
명공께서 너그럽게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원술이 냉소하며 말하였다.
"너희 주인이 조조의 병세가 급박하지 않았다면 어찌 감히 나에게 딸을 주겠다고 하였겠느냐?"

왕해가 부드럽게 아뢰었다.
"지금 구원하지 않으면, 장차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 되어 명공께도 화가 미칠 것입니다."

원술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하였다.
"여포는 변덕이 심하여 신뢰할 수 없다.
먼저 딸을 보내고, 그다음에야 내가 군사를 일으키겠다."

허사와 왕해는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학맹과 함께 서둘러 하비성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귀환길에 현덕의 진영을 지나야 했다.

허사가 이르기를
"낮에는 통과할 수 없소.
밤이 깊은 삼경(三更, 자정 무렵)에 우리 둘은 먼저 가고, 학 장군은 후방을 맡아 달라."

 

장비, 학맹을 생포하다

 

그렇게 의논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밤중에 허사와 왕해는 몰래 지나갔으나, 학맹이 군사를 이끌고 이동하는 중, 장비가 갑자기 진을 쳐 길을 막았다.

학맹이 싸움을 걸었으나, 단 한 번 맞붙은 뒤 장비에게 생포되고 말았다.
학맹이 이끌던 500명 병사는 모두 죽거나 흩어졌다.
장비는 학맹을 포박하여 유비에게 끌고 갔다.
유비는 학맹을 묶어 대군영으로 데려가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가 학맹을 심문하자, 학맹은 사실대로 고하였다:
"허사와 왕해가 원술에게 구원을 청하러 갔고, 여포는 딸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조조는 크게 노하여 명하였다.
"군문 앞에서 학맹을 참하라!"

 

즉시 학맹은 목이 베였다.

조조는 또 명령을 내려 모든 진영에 통지하였다:
"만일 여포의 편을 들어 달아나는 자가 있으면, 군율에 따라 참하리라!"

각지의 병사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를 불러 당부하였다.
"우리가 맡은 곳은 회남(淮南)으로 통하는 요충지다.
두 아우는 마음을 다잡아, 절대로 조공의 군율을 어기지 말도록 하라."

장비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우리가 적장 하나를 잡았건만, 조조는 칭찬은커녕 오히려 겁을 준다니, 어찌 된 일이오?"

현덕이 타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조조는 대군을 통솔하니, 군율로 다스리지 않으면 군심을 다잡을 수 없소.
부디 명령을 범하지 말라."

관우와 장비는 이에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꺾인 길목, 여포의 마지막 계책

 

이때 허사와 왕해는 서둘러 하비성으로 돌아와 여포를 알현하고 아뢰었다.
"원술께서는 신부를 먼저 받아야 그제야 군사를 일으켜 구원에 나설 뜻을 보이셨습니다."

여포가 묻기를
"그러면, 어떻게 보내야 하겠는가?"

허사가 답하였다.
"지금 학맹(郝萌)이 포로로 붙잡혀, 조조(曹操)가 분명 우리 사정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분명히 길목마다 방비를 갖추었을 터이니, 만약 장군께서 친히 호송하지 않는다면 누가 포위망을 뚫을 수 있겠습니까?"

여포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 바로 보내는 것이 어떠한가?"

허사가 고개를 저으며 아뢰었다.
"오늘은 흉신(凶神)이 주재하는 날이라 길하지 못하니 떠나서는 아니 됩니다.
내일이야말로 대길(大利)한 날이니, 술시(戌時, 오후 7시 9시)나 해시(亥時, 오후 9시11시)에 길을 나서야 합니다."

이에 여포는 명령을 내렸다.
"장요와 고순에게 병사 삼천 명을 이끌게 하고, 조촐한 수레 하나를 준비하게 하라.
나는 친히 신부를 업고 이백 리를 호송한 뒤, 그때 너희 두 사람이 최종 목적지까지 인도하라."

그리하여 여포는 모든 준비를 갖추어 결전의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여포, 딸을 업고 돌파 시도하다

 

그리하여 이튿날 밤, 이경(二更, 밤 9시~11시) 무렵. 여포는 어린 딸을 부드러운 솜으로 몸을 감싸고, 갑옷으로 단단히 싸매어
자신의 등에 업었다.
그는 손에 화극을 움켜쥐고, 적토마에 올라탔다.
성문을 조심스레 열게 하여 자신이 앞장서고, 장요와 고순이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작은 수레 하나를 준비시켜, 딸을 이송할 준비까지 해두었다.
여포 일행이 막 현덕의 진영 앞에 이르렀을 때
우렁찬 북소리 한 번!
관우와 장비가 이끄는 군사들이 길을 막아서며 크게 외쳤다.

"멈춰라, 여포!"

여포는 놀라 급히 길을 뚫으려 하였다.
싸움을 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곧 현덕이 군사를 이끌고 몰려오고, 양군은 엉켜 치열한 혼전을 벌였다.

여포는 비록 천하 무쌍의 용맹을 지녔으나, 지금은 어린 딸을 몸에 묶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상처를 입힐까 두려워 함부로 돌파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뒤이어 서황허저도 이끄는 군사가 달려와 포위를 더욱 좁혔다.

성 밖에는 "여포야, 달아나지 마라!"는 외침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여포는 사방이 포위된 절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후퇴하여 다시 하비성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현덕은 군사를 거두고, 서황과 허저 역시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여포는 이 번 탈출 시도에서 단 한 걸음도 빠져나가지 못하였다.
하비성은 점점 더 조여드는 조조의 포위망 속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만을 더해갔다.

여포는 성으로 돌아와 마음이 괴롭고 시름겨워 다만 하루 종일 술에 의지하여 슬픔을 잊고자 할 뿐이었다.


홍수 속에 잠긴 하비성, 여포의 몰락

 

그 즈음, 조조는 하비성을 포위하여 두 달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급보가 이르렀다.
"하내태수(河內太守) 장양이 동시(東市)에서 군사를 일으켜 여포를 구원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소식은 곧 반전되었다.
"장양의 부하 양추가 장양을 살해하고 그 머리를 들고 조조에게 바치려 하였으나, 다시 장양의 심복 장수인 휴고에게 살해당하고
도리어 견성(犬城)으로 달아났습니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사환(史渙)을 파견하여 휴고를 추격해 참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이어 조조는 중군의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 숙의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장양은 다행히 자멸했으나, 북쪽으로는 원소, 동쪽으로는 유표장수의 위협이 남아 있소.
하비성을 오래 포위하였으나 공을 이루지 못했으니, 차라리 군사를 거두어 허도로 돌아가고자 하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때 순유가 급히 나서서 만류하였다.

순유가 아뢰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여포는 이미 여러 차례 패하여, 예전의 날카로운 기세를 잃었습니다.
장수는 군의 으뜸입니다.
장수가 쇠하면 군사도 싸울 마음이 사라집니다.
게다가, 여포는 꾀가 부족하고, 진궁의 계책도 지금은 미혹에 빠져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공격을 재촉하면,
여포를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포위된 성의 위기

 

이때 곽가가 나서서 웃으며 아뢰었다.

곽가가 말하였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별다른 희생 없이, 하비성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 계책은 20만 대군보다도 나은 것입니다."

순욱이 곽가를 바라보며 묻기를
"혹시 기수(沂水)와 사수(泗水)의 물길을 터뜨리려는 것입니까?"

곽가가 웃으며 답하였다.
"바로 그 뜻입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명령을 내렸다.
군사를 시켜 기수와 사수, 두 강의 제방을 무너뜨리게 하였다.
조조의 병력은 모두 높은 언덕에 주둔하고 있었으므로, 높은 곳에서 하비성이 물에 잠기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하비성은 동문(東門)을 제외한 모든 성문이 급류에 잠겼다.
오직 동문만이 겨우 물에 잠기지 않고 남아 있었다.
성 안에서 급보가 연달아 올라오니, 여포가 사람을 모아 말하였다.

"나는 적토마를 타고 물살 위를 달리듯 건너니, 무엇이 두려우랴!"

그러나 여포는 물에 잠긴 성을 바라보며 날마다 처자들과 함께 좋은 술을 마시며 시름을 달래기에 급급하였다.
그리하여, 과음과 색욕에 빠진 나머지, 그 장대한 체격과 용맹했던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다.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본 여포는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며 탄식하였다.

"내가 술과 색으로 몸을 망쳤구나! 오늘부터 반드시 경계해야겠다."

곧 명령을 내려 성 안에서 술을 마시는 자는 모조리 참형에 처하겠다고 엄하게 금하였다.

 

 

백문루의 최후 

이때, 후성이 기르던 말 열다섯 필이 마굿간 관리에게 도둑맞아, 그중 일부가 현덕의 진영으로 넘어가려 하였다.
후성은 이를 알고 분노하여, 도둑을 추격해 죽이고 말을 모두 되찾아왔다.
여러 장수들은 후성을 축하하며 술자리를 열고자 하였다.
후성은 술을 빚어 다섯 섬 남짓 마련하고 여포에게 먼저 술 다섯 병을 바쳤다.

그는 예를 갖추어 아뢰었다.
"장군의 위엄 덕분에 잃었던 말을 되찾았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기뻐하며 술을 마련했지만, 감히 함부로 마시지 않고 먼저 장군께 바칩니다."

그러나 여포는 크게 노하였다.

여포가 외치기를
"내가 방금 금주령(禁酒令)을 내렸는데, 너희가 도리어 술을 빚어 모이다니, 이는 틀림없이 나를 배반하려는 징조로다!"

즉시 후성을 끌어내어 참형에 처하려 하였다.
송헌위속 등 여러 장수가 함께 나서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여포가 말하였다.
"내 명령을 어긴 자는 참수해야 마땅하나, 오늘은 너희들의 청을 봐서 백 대를 매질한 뒤 놓아주겠다."

그러나 장수들의 끈질긴 애원으로 등을 오십 대 매질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장수들은 모두 크게 낙담하였다.
그날 밤 송헌과 위속이 후성의 집을 찾아가 위로하였다.

후성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대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송헌이 이르기를
"여포는 오직 아내와 딸만 아끼고, 우리 장수들은 짚신처럼 여기니 어찌 통탄하지 않겠는가?"

위속 또한 탄식하며 말하였다.
"성은 포위되고, 해자는 범람하고, 우리 목숨은 하루살이만도 못하는구나!"

송헌이 이르기를
"여포는 인정도 의리도 없는 자다.
우리가 그를 버리고 달아나는 게 어떻겠는가?"

위속이 응답하였다.
"그것은 사내답지 못하다.
차라리 여포를 잡아 조공께 바치자!"

이에 후성이 말하였다.
"내가 말을 잃었다가 벌을 받았으니, 여포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오직 저 붉은말, 적토마뿐이다.
너희가 성문을 열고 여포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나는 적토마를 훔쳐 먼저 조조를 찾아가겠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음모를 굳게 결의하였다.
그날 밤 후성은 몰래 마구간으로 숨어들어 적토마를 끌어내어 동문을 향해 달렸다.
위속은 성문을 열어 그를 내보내고, 뒤에서는 쫓는 척 위장하였다.
후성은 곧장 조조의 진영에 도착하여 적토마를 바쳤다.

그리고 송헌과 위속이 성 안에 백기를 꽂고 성문을 열어 여포를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세히 고하였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즉시 포고문(榜文) 수십 장을 써서 화살에 묶어 성 안으로 쏘아 넣게 하였다.

포고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장군 조조(曹操)는 특별히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여포를 정벌하노라.
만약 대군에 항거하는 자는 성을 함락하는 날, 문중을 모두 주륙 하리라.
그러나 여포를 잡아 바치는 자, 혹은 여포의 머리를 바치는 자에게는 높은 벼슬과 큰 상을 내리리라.
이 뜻을 똑똑히 알지어다."

 

백문루 최후의 비명 

 

다음날 새벽 성 밖은 땅을 울리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여포는 깜짝 놀라 화극을 들고 성루로 올라가 사방을 살펴보았다.

 

각 성문을 점검하던 여포는 동문을 지키던 위속을 꾸짖었다.
"너는 어찌하여 후성을 추격하지 못해 내 적토마를 잃게 하였느냐!"

여포는 분노하여 위속을 처벌하려 하였다.
그러나 성 아래의 조조의 군대는 이미 성 위에 휘날리는 백기(白旗)를 보고 전군에 명하여 일제히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여포는 어쩔 수 없이 친히 출전하여 방어하였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격렬하게 싸운 끝에 조조의 병사들은 다소 후퇴하였다.

여포는 겨우 한숨을 돌리고 성루에 올라 의자에 몸을 기대어 잠시 숨을 돌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이때 송헌이 기회를 틈타 좌우 시종들을 물리치고 몰래 여포의 화극을 훔쳤다.
그리고 위속과 함께 달려들어 굵은 밧줄로 여포를 단단히 포박하였다.
여포는 깜짝 놀라 눈을 떴으나 이미 몸이 동여매어 있어 저항할 수 없었다.

그는 크게 외쳤다.
"좌우! 좌우!"

그러나 좌우 군사들은 이미 모두 달아나거나 혹은 송헌과 위속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곧 송헌은 백기를 높이 흔들어 신호하였다.
조조 군대는 이를 보고 일제히 성문 앞으로 몰려왔다.
성문이 활짝 열리고 조조의 군사들이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

한편, 고순장요는 서문 쪽에서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사방을 에워싼 물과 조조 군사에 막혀 끝내 사로잡히고 말았다.
진궁 또한 남문으로 달아나다가 서황에게 붙잡혔다.
조조는 성에 입성한 즉시 명령을 내려 두 강에서 터뜨린 물을 서서히 빼게 하고, 방문(榜文)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그 후 조조는 현덕과 함께 백문루(白門樓)에 올라앉았다.

관우, 장비는 좌우에서 호위하였다.
그리고 사슬에 묶인 여포와 사로잡힌 진궁, 고순, 장요 등이 차례로 끌려 나왔다.
여포는 장대하고 웅장한 체구였지만, 지금은 밧줄에 꽁꽁 묶여 볼품없이 질질 끌려왔다.

여포는 처량하게 소리쳤다.
"나를 묶은 것이 너무 심하오!
부디 느슨하게 해 주시오!"

조조가 냉소하며 말하였다.
"호랑이를 묶는데 어찌 느슨할 수 있겠는가?"

여포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곁에 후성, 송헌, 위속 등이 당당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여포는 분노와 슬픔에 차 외쳤다.
"내가 너희를 우대해 왔거늘 어찌 차마 나를 배반하느냐!"

송헌이 냉정하게 답하였다.
"장군은 아내와 첩의 말을 듣고 장수들의 충언은 듣지 않았소.
어찌 은혜가 두텁다 하겠소?"

여포는 이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였다.
그때 고순이 끌려 나오자 조조가 물었다.
"그대는 무슨 말이 있는가?"

고순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조조는 노하여 명령하였다.
"당장 목을 쳐라!"

이리하여 고순은 군중 앞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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