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은 용을 풀고, 호랑이를 놓다
그때 곽가와 정욱이 군량과 자금을 점검하고 막 돌아왔는데, 조조가 이미 유비에게 병권을 맡겨 서주로 출병시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곽가와 정욱은 급히 조조에게 들어가 간언 하였다.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유비에게 군사를 맡기셨습니까?”
조조가 답하였다.
“원술을 막기 위한 것일 뿐이오.”
정욱이 말하였다.
“예전에 유비가 예주목으로 있을 때, 저희가 그를 죽이시라 청했지만 승상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 군권까지 주셨으니, 이는 마치 용을 바다에 풀어주고 호랑이를 산에 돌려보낸 것과 다름없습니다.
앞으로 그를 제어하려 하신들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곽가 또한 말하였다.
“승상께서 유비를 죽이지 않으신다 해도, 떠나보내서는 아니 됩니다.
옛사람이 말하길, ‘하루 적을 풀어주면, 만세의 근심이 된다’ 하였습니다.
부디 승상께서 깊이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조는 그 말에 수긍하고, 허저에게 병사 오백을 이끌고 나아가 기필코 유비를 쫓아 되돌려 오도록 명령하였다.
허저는 명을 받들고 떠나갔다.
명분 앞의 칼날, 진심 속의 거절
한편, 현덕이 마침 길을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뒤편에서 흙먼지가 갑자기 자욱하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 말했다.
“이는 분명 조조의 군사가 우리를 뒤쫓아오는 것이다.”
곧 진영을 멈추고 하차하였으며, 관우와 장비에게 명하여 각각 무기를 들고 양쪽에 서서 대비하게 하였다.
잠시 후 허저가 도착하였다.
군세가 엄정하고 갑옷이 정비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말에서 내려 진중으로 들어가 현덕을 만났다.
현덕이 물었다.
“공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소?”
허저가 대답하였다.
“승상의 명을 받들어 장군께 귀환을 요청드리러 왔습니다.
승상께서 따로 상의할 일이 있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현덕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장수가 전장에 있을 때는 군주의 명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소.
나는 이미 황제를 직접 알현하였고, 또한 승상의 분부도 친히 들은 바가 있소.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상의할 일은 없습니다.
공께서는 속히 돌아가, 이 뜻을 승상께 전하여 주시오.”
허저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승상께서는 평소 유비와의 사이가 각별했고, 이번에도 나에게 그를 공격하라고 명한 바는 없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이후 판단을 맡기는 수밖에 없겠구나.’
이에 현덕과 작별하고,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허도로 돌아간 허저는 곧 조조를 알현하여 현덕이 한 말을 상세히 전하였다.
조조는 이를 듣고도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때 정욱과 곽가가 나아와 아뢰었다.
“유비가 돌아오기를 거부하였으니, 그 마음이 이미 변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자 조조가 말하였다.
“내가 이미 주령과 노소 두 사람을 그의 곁에 붙여 두었으니, 현덕이 감히 마음을 달리하지는 못할 것이오.
게다가 그를 이미 보낸 바에, 어찌 다시 후회할 수 있겠소?”
이리하여 조조는 결국 유비를 더는 추격하지 않았다.
後人有詩歎玄德曰:
“束兵秣馬去匆匆,
心念天言衣帶中。
撞破鐵籠逃虎豹,
頓開金鎖走蛟龍。
후인의 시: 유비를 탄식하며
병기 거두고 말에 먹이 주며 총총히 떠나니,
마음엔 옥대 속 천자의 말씀 깊이 간직했도다.
쇠창살 새장 깨뜨리고 호랑이와 표범의 굴에서 달아났으며,
금빛 자물쇠를 돌연 열고 교룡처럼 달아나니라.
몰락의 시작, 원술의 마지막 발
한편, 마등은 현덕이 이미 떠난 것을 보고, 변경의 보고가 급하였기에 다시 서량으로 돌아갔다.
현덕의 군대가 서주에 도착하자, 자사 차주가 나와 영접하였다.
연회를 마친 뒤, 손건과 미축 등이 모두 와서 현덕에게 인사하였다.
현덕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둘러보는 한편, 사람을 보내어 원술의 형세를 엿보게 하였다.
탐문하던 자가 돌아와 아뢰기를,
“원술이 사치가 너무 심하여, 뇌박과 진란이 모두 그를 떠나 숭산으로 가버렸습니다.
원술의 세력은 크게 기울었으며, 황제 자리를 원소에게 넘긴다는 서찰까지 보냈습니다.
이에 원소가 사람을 보내 원술을 불러들이려 하고, 원술은 인마와 궁전 물품을 수습하여 서주로 먼저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현덕은 원술이 곧 도착할 것을 알고, 곧 관우, 장비, 주령, 노소 등과 함께 오만의 군사를 이끌고 출진하였다.
그리하여 선봉으로 오는 기령과 마주쳤다.
장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기령에게 돌진하였다.
십 합도 채 지나지 않아, 장비가 한껏 고함을 지르며 창을 들어 기령을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리니, 기령의 군대는 무너져 달아났다.
천자의 명을 받들다
곧이어 원술이 친히 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섰다.
현덕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었는데, 주령과 노소를 왼쪽에, 관우와 장비를 오른쪽에 배치하고, 자신은 중앙에서 군을 거느려 원술과 마주하였다.
진영의 깃발 아래서 현덕은 원술을 꾸짖어 말하였다.
“네가 반역을 저질러 도리에 어긋났으니, 나는 천자의 분부를 받들어 너를 토벌하러 왔다.
마땅히 스스로 결박되어 항복하면 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술은 욕설로 대꾸하였다.
“돗자리 짜고 짚신 삼던 미천한 놈이 감히 나를 업신여기다니!”
하며 군사를 몰아 공격해왔다.
현덕은 잠시 물러선 후, 좌우의 군사를 진영에서 일시에 내보내게 하였다.
이에 원술의 군사는 무참히 무너졌고, 시체가 들판을 가득 메우고, 피는 도랑을 이루었다.
병사들이 도망친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숭산의 뇌박과 진란이 원술의 재물과 식량, 마초(馬草)를 모두 약탈해 갔고, 원술이 수춘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도적떼의 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강정이라는 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의 곁에 남은 병력은 고작 천여 명, 그것도 모두 노약자들뿐이었다.
꿀물 한 모금, 제왕의 최후
때는 마침 한여름이라 무더위가 심하였고, 식량은 이미 바닥이 나서, 겨우 보리 서른 곡(斛, 약 3000리터)만 남아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자가 속출하였다.
원술은 거친 밥을 입에 넣을 수 없다 하여 삼키지 못하고, 주방장에게 이르길,
“목이 마르니 꿀물을 가져오라.”
그러자 주방장이 말하였다.
“핏물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어찌 꿀물이 있겠습니까?”
원술은 침상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내 피를 한 말 넘게 토하고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때는 건안(建安) 4년 6월이었다.
後人有詩曰:
漢末刀兵起四方,無端袁術太猖狂。
不思累世爲公相,便欲孤身作帝王。
強暴枉誇傳國璽,驕奢妄說應天祥。
渴思蜜水無由得,獨臥空床嘔血亡。”
후세 사람들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탄식하였다.
한나라 말기, 사방에 전란이 일어나니,
이유도 없이 원술이 미쳐 날뛰었네.
조상을 생각지도 않고 제왕을 꿈꾸며,
외로운 몸으로 황제를 자처하였도다.
전옥새를 내세워 천명을 얻었다 자만하더니,
교만과 사치로 하늘의 뜻을 스스로 가리웠다.
꿀물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빈 침상에 홀로 누워 피 토하며 죽었도다.
옥새의 주인, 조조의 손으로
원술이 죽자, 그의 조카 원윤이 관(棺)과 처자식을 이끌고 여강으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서구(徐璆)에게 모조리 살해당하였다.
서구는 원술의 전옥새(傳國璽)를 빼앗아 허도로 가져가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는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서구를 고릉태수(高陵太守)에 봉하였다.
이때, 전국옥새는 드디어 조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국 안정과 음모의 씨앗
한편, 현덕은 원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표문을 지어 조정에 보고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조조에게도 서찰로 전하였다.
또한, 주령과 노소를 허도로 돌아가게 하고, 군사들은 서주에 남겨 지키게 하였다.
현덕은 스스로 성을 나가, 난리로 흩어진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생업으로 돌아가도록 타이르며 민심을 다졌다.
그 사이, 주령과 노소가 허도로 돌아가 조조를 알현하고 보고하기를,
“현덕이 군사를 남겨 서주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대노하여, 두 사람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순욱이 말하였다.
“지휘권이 이미 유비에게 넘어갔으니, 이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었을 뿐입니다.”
조조는 그 말에 분을 거두고 두 사람을 용서하였다.
순욱은 다시 말하였다.
“차주(車胄)에게 밀서를 보내어, 안에서 도모하게 하십시오.”
조조는 이 계책을 받아들여,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차주를 만나 조조의 지시를 전하였다.
차주는 즉시 진등(陳登)을 불러 함께 논의하였다.
차주가 말하였다.
“유비는 성 밖에 나가 백성들을 모으고 있으니,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다.
장군께서는 병사들을 옹성(甕城) 주변에 복병시키고, 그가 말 타고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한칼에 베어버리시오.
나는 성 위에서 후방 군사를 막겠소.
그리하면 대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오.”
차주는 이 말에 따랐다.
진등은 집으로 돌아가 부친 진규(陳珪)에게 이 일을 고하였다.
진규는 아들을 시켜 즉시 현덕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 하였다.
진등은 아버지의 명을 받들고 급히 말을 달려가다가 마침 먼저 돌아오던 관우와 장비를 만나,
“차주가 유비 장군을 해치려 합니다”라는 소식을 전하였다.
본래 관우와 장비는 먼저 돌아오고, 현덕은 뒤따라오는 중이었다.
어둠 속의 복수, 칼 위에 선 정의
장비는 진등의 말을 듣자마자 분노하며 곧바로 달려가 차주를 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관우가 말하였다.
“그자가 옹성 주변에 복병을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대로 가면 틀림없이 손해를 입을 것이다.
내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차주를 반드시 죽일 수 있다.”
장비가 물었다.
“무슨 계책이오?”
관우가 말하였다.
“밤을 틈타 조조의 군사로 가장하여 서주성에 접근하자. 그리하면 차주는 속아 우리를 맞이하러 나올 것이니, 그 순간을 노려 기습해 죽이자.”
장비는 그 계책에 동의하였다.
마침 유비의 군대는 본래 조조군의 깃발과 갑옷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그날 밤 삼경(三更, 밤 11시~1시)에 서주의 성가까이 이르러
문을 열라고 외쳤다.
성 위에서 누군가 묻기를,
“누구냐?”
이에 병사들이 다함께 외쳤다.
“조승상께서 보내신 장문원(장요)의 병사다!”
성 안에서는 곧바로 차주에게 그 소식을 알렸다.
차주는 당황하여 진등을 다시 불러 상의하며 말하였다.
“이들을 맞이하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것이고, 맞으러 나가자니 혹시 속임수일까 걱정스럽소.”
목을 베고 외치다: 반적은 죽었노라
차주가 적교 근처에 다다르자, 성 위에 숨어 있던 진등이 화살을 비 오듯 쏘아대었다.
차주는 성 주위를 돌며 달아났고, 관우가 뒤쫓아가 한 칼에 말 아래로 베어 쓰러뜨렸다.
관우는 차주의 머리를 베어 높이 들고, 성을 향해 외쳤다.
“반역자 차주를 내가 이미 죽였노라!
다른 이들은 죄가 없으니,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이에 성 안의 병사들은 무기를 거꾸로 들고 모두 투항하였고, 군사와 백성들은 모두 안정을 되찾았다.
관우는 차주의 머리를 가지고 유비를 마중 나가, 차주가 음모를 꾸며 유비를 해치려 했던 일을 모두 알렸다.
유비는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조조가 이 소식을 듣고 오게 된다면, 우리는 어찌하겠는가?”
관우가 말하였다.
“저와 장비가 조조를 맞서 싸우겠습니다.”
유비는 매우 후회하며 한숨을 쉬고, 곧 서주성으로 들어갔다.
백성들과 노인들이 길가에 엎드려 현덕을 환영하였고, 현덕은 성 안으로 들어가 장비를 찾았다.
그런데 장비는 이미 차주의 가족을 모두 죽여버린 뒤였다.
유비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조조의 심복을 죽였을 뿐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없애다니…
이제 그가 우리를 가만두겠는가?”
그때 진등이 나서며 말하였다.
“신에게 조조를 물리칠 계책이 있사옵니다.”
바로 이때—
“홀몸으로 호랑이 굴을 빠져나온 자가, 이제 묘책으로 전쟁의 연기를 걷어내려 하도다.”
진등이 과연 어떤 계책을 내놓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부디 다음 이야기를 들어 그 내막을 풀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