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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제22회 원조흥군(1)

by 장만리 2025.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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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二十二回

 

 袁曹各起馬步三軍 關張共擒王劉二將
(원조각기마보삼군, 관장공금왕유이장)
 원소와 조조가 각각 기병과 보병의 삼군을 일으키고, 관우와 장비가 왕충과 유대 두 장수를 함께 사로잡다

袁曹興軍 (원조흥군) → 원소와 조조가 군사를 일으킴

정현의 서찰로 원소를 움직이다

각설하고, 진등이 현덕에게 계책을 아뢰며 말하였다.
“조조가 두려워하는 이는 바로 원소입니다.

원소는 기주(冀州), 청주(青州), 유주(幽州), 병주(幷州)의 여러 군을 호랑이처럼 웅거하고 있으며, 갑옷을 입은 병사만도 백만이요, 문관과 무장이 매우 많습니다.

지금 어찌하여 서신을 써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현덕이 말하였다.
“원소는 예전부터 나와 교류가 없었고, 지금은 또 그의 아우를 갓 격파한 터라, 어찌 나를 도와주려 하겠는가?”

진등이 말하였다.
“이곳에 있는 한 인물이 원소 집안과 3대에 걸쳐 친교를 이어왔습니다.

만일 그 사람의 서신 하나만 얻어 원소에게 보내드린다면, 원소는 반드시 도우러 올 것입니다.”

현덕이 누구인가 묻자 진등이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공께서 평소에 몸을 낮추어 공경하며 예를 다하던 분인데, 어찌 그를 잊으셨습니까?”

현덕이 문득 크게 깨달으며 말하였다.
“혹시 정강성 선생이 아니오?”

진등이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정강성, 그 이름으로 문장이 열리고 전쟁이 움직이다

정강성(鄭康成)의 본명은 정현이었다.
학문을 사랑하고 재능이 뛰어나, 일찍이 대유학자 마융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마융은 강의할 때마다 붉은 장막을 둘러치고, 앞자리에 제자들을 앉히고, 뒤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기생들을 배치하며, 양옆으로는 시녀들을 세워 두었다.
이처럼 화려하고 어지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정현은 눈길 한 번 곁으로 두지 않고 삼 년을 묵묵히 강의만 들었다.

이를 본 마융은 크게 감탄하여, 그가 학문을 모두 익히고 고향으로 돌아갈 즈음, 이렇게 말하며 그를 전송하였다.
“내 평생 가르침을 받은 자 중, 진정 내 학문의 진수를 깨친 사람은 오직 정현 한 사람뿐이다!”

정현의 집안에서 일하던 여종들조차도 『모시(毛詩)』에 정통했다.
한번은 여종 하나가 정현의 뜻을 거스르자, 그는 계단 아래 꿇어앉히게 하였고, 이를 본 다른 여종이 『시경』의 구절을 빌려 장난스레 말했다.

“어찌하여 진흙 속에 빠졌는가?”
(胡爲乎泥中)

그러자 꿇려 있던 여종이 곧바로 다른 구절로 받아쳤다.
“말로 하소연했지만, 그의 노여움을 만났습니다.”
(薄言往愬,逢彼之怒)

그 모습은 절제 속의 여유였고, 학문 속에 깃든 품격이었다.
이처럼 정현의 집안 풍류는 우아하고도 고상하였다.

한나라 환제 시절, 정현은 벼슬이 상서(尚書)에까지 올랐으나,
십상시(十常侍)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서주(徐州)에 은거하였다.
유비(현덕)는 젊은 시절 탁군에 있을 때 이미 정현을 스승으로 모셨고, 서주목이 된 후에도 때때로 오두막을 찾아 예를 갖추며
지혜를 구하는 등 극진히 존경하였다.
진등이 정현의 존재를 일깨우자,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몸소 진등과 함께 정현의 집을 찾아가 구원 요청 서신을 써줄 것을 청하였다.
정현은 그 뜻을 비감히 여기고 흔쾌히 받아들여, 한 장의 서신을 곧바로 써 유비에게 건넸다.
유비는 그 서신을 품에 안고 손건을 보내어, 그 밤 별빛 아래로 서신을 품고 원소에게로 달려가게 하였다.

원소는 서신을 읽고 나서 깊이 생각하더니, 스스로 중얼거렸다.
“유비가 내 아우를 무너뜨렸으니 원래 도와줄 수 없는 일이나, 정 상서의 간청이라면 외면할 수 없지...”

마침내 문무백관을 불러 모아, 조조를 정벌하기 위한 대병을 일으킬 것을 상의하였다.

 

모사들의 격돌 — 원소, 결단 앞에 서다

원소는 정현의 서신을 받은 뒤 군사를 일으키기로 마음을 정하고, 곧바로 문무 관료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모사 전풍이 먼저 나서 말하였다.
“수년째 전쟁이 이어지며 백성들은 지쳐 있고, 곳간도 텅 비어 있어 당장 대군을 일으키긴 어렵습니다.
우선 천자께 우리가 공손찬을 무찌른 공적을 보고 드리고, 만약 조조가 이를 방해한다면 그 죄를 들어 군을 일으킨다는 명분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병사를 여양(黎陽)에 주둔시키고, 하내(河內) 지역에는 배를 더 만들고 군기를 수리하며, 정예병을 나눠 국경마다 배치하면, 3년 안에 반드시 대사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모사 심배가 반대하고 나섰다.
“아닙니다.
명공(원소)의 위엄과 무력, 그리고 강력한 하북 군사력을 믿는다면, 지금 당장 조조 같은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왜 시간을 낭비하며 미적거려야 한단 말입니까?”

그 말에 모사 저수도 반론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단순한 병력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조조는 법령이 엄정하고, 병사들도 단련되어 있어 공손찬과는 전혀 다릅니다.
지금 우리가 당장 명분 없이 군사를 일으킨다면, 되레 정당성을 잃게 됩니다.
전풍의 계책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자 곽도가 또 나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조는 한나라를 어지럽히고 임금을 겁박한 역적이니, 그를 치는 것이 어찌 명분이 없단 말입니까?
지금이야말로 명공께서 대업을 이룰 기회입니다.
정현의 뜻을 받들고, 유비와 함께 대의를 내세워 조조를 치는 것이야말로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에 부합하는 길입니다!”

 


여섯 명의 계책 — 원소, 결단의 순간을 맞다

 

이렇게 네 명의 모사들이 각자의 논리를 내세워 격렬히 다투었으나 결정은 나지 않았고, 원소는 마음이 흔들려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때, 문득 허유와 순심이 회의장에 들어오니 원소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두 분은 언제나 깊은 통찰이 있으니, 이번 일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오?”

두 사람은 절을 올리고 함께 대답하였다.
“명공께서 많은 병사로 적은 병사를 이기고, 강한 힘으로 약한 무리를 제압하며, 한나라를 어지럽힌 역적 조조를 토벌하시는 것은
천명을 받드는 일입니다.
지금 당장 군을 일으키는 것이 옳습니다!”

원소는 두 사람의 말에 크게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내 뜻과 같도다.”

그리하여 군사를 일으키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손건을 정현에게 다시 보내어 감사의 뜻을 전하게 하고, 유비에게도 준비하라고 연락하였다.

 

 

진림의 격문 — 역사에 묻다, 정의로움이란 무엇인가

 

병력 배치가 모두 결정되자, 곽도가 앞으로 나아가 원소에게 아뢰었다.
“명공께서 조조를 치시는 것은 천명과 대의에 따른 일입니다.
그러나 그 뜻을 천하에 알리려면, 조조의 온갖 죄악을 조목조목 밝히고, 그 죄를 꾸짖는 격문을 각 지방에 돌려야 하옵니다.
이렇게 해서 토벌의 명분을 바르게 세워야,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병사들의 기세도 따를 것입니다.”

원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서기 진림에게 명하여 격문을 초안하게 하였다.

진림의 자는 공장(孔璋)이라 하며, 당대에 문장력과 재능이 널리 알려진 명필이었다.
그는 영제(靈帝) 시절에 황실의 주부(主簿)로 일하면서, 조정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하진(何進)에게 여러 차례 충언을 올렸으나,
그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이어 동탁의 난이 일어나자 진림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주(冀州)로 몸을 피하였고, 이후 원소가 그를 알아보고 기록을 맡는 관리로 등용하였다.

이날, 진림은 명을 받자마자 붓을 들었고, 앉기도 전에 격문 한 편을 써 올렸으니, 그 첫머리는 이러하였다.
“들으니, 현명한 임금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위기를 꿰뚫어 보고 변란을 다스리며, 충성스러운 신하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이를 걱정하며 먼저 나서서 길을 연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인물이 있어야 비범한 일이 일어나며, 비범한 일이 있어야만 큰 공로가 이루어지는 법이옵니다.
그런 일들은 본디, 평범한 사람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진림은 고대의 예를 들어 정의의 이름으로 조조를 규탄하였다.
먼 옛날, 강력한 진(秦)나라에 어리석은 군주가 있었고, 내시 조고가 정권을 잡아 조정의 권력을 제멋대로 휘둘렀습니다.

천자의 명을 빙자해 상벌을 제 마음대로 하니, 당시 사람들은 그의 눈치를 보느라 바른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에는 조고가 황제를 죽이고, 망이궁(望夷宮)의 화가 터졌으며, 조정은 불타고 종묘사직은 무너졌습니다.
그 참혹한 치욕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천추의 경계가 되었나이다.

또한 한나라 여후(吕后)의 말년에는 여씨 일족인 여산과 여록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습니다.
이들은 안으로는 황실의 두 군대를 장악하고, 밖으로는 조나라와 양나라의 지역 권력을 틀어쥐었습니다.

나라의 중대사를 독단으로 처리하고, 궁궐의 일까지 사사로이 결정하니, 윗사람은 누르고 아랫사람은 올라서고, 온 천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에 강후(주발)와 주허후(유장)가 군사를 일으켜 분노를 터뜨리며 역적들을 처단하고, 문제(文帝)를 받들어 황제로 세웠습니다.

그 결과 왕도는 다시 일어나고, 천하는 밝은 빛으로 가득하였으니, 이는 바로 충신과 대신들이 권도를 바르게 세워 나라를 바로잡은 훌륭한 본보기였던 것입니다.

 

조조의 가문을 규탄하고, 격문에 대의를 담다

 

사공 조조는 그 조부 조등이 중상시(中常侍)로서, 좌관·서황과 함께 조정을 어지럽힌 요괴 같은 무리였으며, 탐욕스럽고 방탕하여 교화를 해치고 백성을 해쳤습니다.
그 아버지 조숭은 남의 집에 입양되어 자라며 거짓으로 벼슬을 얻고, 수레에 금과 옥을 실어 권문세가에 뇌물로 바쳐 높은 관직을 훔쳤으며, 국정의 중심을 기울게 하였습니다.
조조는 환관의 남긴 자손으로서 본래 고결한 덕은 없고, 개와 같은 간사한 성정을 지녔으며, 혼란을 즐기고 재앙을 일삼았습니다.

막부(幕府)는 원래 조정을 도우려는 뜻으로 조조를 등용하여 도적을 정벌하게 하였고, 조조가 매와 개처럼 날래다 하여 발톱과 어금니로 삼고자 하였으나, 조조는 어리석고 경솔하며 계략이 짧아 전쟁에 나가면 함부로 나갔다 쉽게 후퇴하였으며, 매번 패하고 병력을 잃는 일이 잦았습니다.

이에 막부에서는 조조를 도와 병력을 나누어주고, 다시 표문을 올려 조정으로 하여금 조조를 동군(東郡)에 임명하고 연주자사(兗州刺史)로 삼아, 호랑이 무늬 옷을 하사하여 위엄을 돋우고, 진나라 군대가 한 번 승리했던 선례에 비유하여 조조 또한 공을 세우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권세를 얻게 되자 오히려 발호하여 제멋대로 포악한 짓을 일삼고, 백성의 재산을 빼앗으며, 어진 사람과 선한 이를 잔혹하게 해쳤습니다.

구강태수(九江太守) 변양은 뛰어난 재주로 천하에 이름이 났고, 곧고 곧은 말로 아첨을 모르는 자였으나, 조조는 그를 죽이고 목을 베어 높이 매달았으며, 그의 아내와 자식까지 모조리 죽이는 참화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선비들은 분개하고 백성들은 깊이 원망하여, 한 사람만 분노해 팔을 들면 온 고을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지경이 되었고, 조조는 이내 서주에서 크게 패하였으며, 땅은 여포에게 빼앗기고, 동쪽 변방에서 거처할 곳을 잃고 방황하였습니다.

막부는 조정의 기틀을 굳건히 하고 반역자를 배척하는 것을 대의로 삼아 다시 군사를 일으켜 여포를 토벌하고자 하였고, 북과 징을 울리며 출정하자 여포의 무리는 궤멸되었으며, 조조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하여 다시 지방 장관의 직위에 앉혔습니다.
이는 연주의 백성에게는 아무 이익도 없고 오직 조조에게는 크나큰 은혜였으니, 조조가 고마움을 알아야 마땅할 일입니다.

 

 

조정 장악과 참혹한 패륜, 조조의 죄악을 천하에 고하다

그 무렵 천자께서 낙양으로 돌아오셨고, 각지의 무리가 조정을 어지럽히며 약탈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침 기주(冀州)의 북방 방어가 급박하여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종사중랑(從事中郎) 서훈을 보내 조조에게 사명을 맡기며, 교외의 사묘를 수리하고 어린 황제를 보필하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뜻을 멋대로 펼쳤고, 황제를 위협하여 수도를 옮기게 하고, 조정의 권력을 죄다 자기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그는 왕실을 모욕하고, 법과 질서를 짓밟았으며, 천자의 명령을 가장하여 제 입으로 말하고, 천자의 형벌이라며 제 손으로 칼을 들었습니다. 

상벌은 그의 심정에 따라 정해졌고, 그가 총애하는 자는 오대(五代)에 걸쳐 작위를 받고, 미움을 산 자는 삼족(三族)이 멸망당했습니다. 

입을 열어 비판하는 자는 대낮에 목이 베였고, 마음속에 불만을 품은 자는 밤새 몰래 제거되었습니다.

백관들은 겁에 질려 입을 다물고, 백성들은 서로 눈빛으로만 의사를 주고받았으며, 상서(尙書)는 조회 내용을 받아 적는 기능직에 불과했고, 공경(公卿)은 조정의 권위를 세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자리를 채우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태위(太尉) 양표는 사도(司徒)와 사공(司空)을 역임하며 국가의 중심을 지탱하던 고위 대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사사로운 분노 하나로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오만한 권력으로 다섯 가지 참혹한 형벌을 가하며, 법도와 기강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의랑(議郎) 조언은 충성스럽고 강직한 성품으로, 황제께 올린 간언이 마땅히 받아들여져 조정으로부터 예우를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밝은 시대의 정치 질서를 어지럽히고, 바른 언론을 차단하기 위해 그를 멋대로 체포하여 임의로 목을 베었습니다.

그 어떤 절차도 없었고, 황제께 보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능묘를 파헤치고 언론을 틀어막다 — 조조의 끝없는 죄악

 

더욱 참혹한 것은 이러하였습니다. 

양효왕(梁孝王)은 선제(先帝)의 동복형제로, 그 능묘는 국가적으로 신성하고 중대한 장소였습니다. 

뽕나무, 소나무, 측백나무가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왕가의 위엄을 지켜주는 숭고한 묘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조는 장수와 병사를 거느리고 능묘를 파헤쳤으며, 관을 부수고 시신을 드러내어 금은보화를 약탈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께서는 눈물을 흘리셨고, 온 나라의 선비들과 백성들 또한 마음 깊이 상심하였습니다.

조조는 이쯤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덤을 도굴하는 전문직인 ‘발구중랑장(發丘中郎將)’과 ‘모금교위(摸金校尉)’까지 따로 두어, 그가 지나간 곳마다 무덤은 파헤쳐졌고, 드러나지 않은 시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은 나라의 삼공 중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도적떼와 다를 바 없는 짓을 거리낌 없이 행하였고, 이로 인해 국정은 더럽혀지고, 백성은 고통받았으며, 그 독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습니다.

조조가 만든 법령은 치밀하면서도 극도로 잔혹하여 백성들을 얽어매는 거미줄과 같고, 발길을 옮기기도 전에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을 들면 덫에 걸리고, 발을 내디디면 함정에 빠지는 꼴이니, 연주(兗州)와 예주(豫州)의 백성들은 숨 쉴 틈조차 없이 고통에 시달리며 탄식하였고, 수도에서는 한숨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예로부터 전적을 두루 살펴보아도, 무도하고 탐욕스러운 신하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이처럼 악독하고, 잔인무도한 자는 조조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조조의 끝을 향한 서곡 — 격문 중 마지막 전운

 

막부(元소의 진영)는 본디 외부의 반란 무리를 응징하기 위해 군을 일으켰고, 내정을 정비할 겨를도 없이 너그러움으로 조조의 악행을 덮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이리와 같은 야심을 품고, 속으로는 재앙을 준비하면서, 끝내 나라를 지탱하던 기둥 같은 인재들을 제거하였습니다.
한나라 황실을 고립시켜 그 뿌리를 약하게 만들었으며, 충직하고 바른 신하들을 모두 제거하고, 오직 권모와 야망만 좇는 자들만 곁에 두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내가 북벌하여 공손찬(公孫瓚)을 치려 했을 때, 그는 강포하고 반역적이었기에 내가 포위한 지 1년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조조는 그 틈을 타, 몰래 공손찬과 서찰을 주고받으며 겉으로는 왕실 군대를 돕는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몰래 공손찬과 손을 잡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음모는 사자를 통해 발각되었고, 공손찬은 참형에 처해졌으며, 조조의 계략은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날카롭던 칼끝은 부러졌고, 그 어둔 음모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조조는 오창(敖倉)에 주둔하며, 황하(黃河)를 등지고 천연의 요새를 믿고 있으나,
이는 마치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겠다고 다리를 벌리는 격이니, 스스로를 과신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막부는 한나라의 정통성을 받들고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며, 길고 날카로운 창을 든 병사 백만에, 북방 기병 수천 부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진영에는 중황(中黃)과 육획(育獲)과 같은 고대의 영웅들처럼 지략과 무력을 갖춘 인물들이 즐비하며, 굳세고 단단한 쇠뇌와 명궁(名弓)을 장비한 병사들이 진군 중입니다.

병주(幷州)에서 출발한 군대는 험준한 태행산(太行山)을 넘어오고, 청주(靑州)의 병력은 제수(濟水)와 락수(漯水)를 건너며 전방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군은 황하를 건너 조조의 본진을 정면으로 치고, 형주(荊州)의 병력은 완(宛)과 엽(葉)에서 조조의 후방을 틀어막을 것입니다.

그 군세는 마치 천둥이 우레처럼 울리고, 호랑이가 대지를 쿵쿵 밟으며 달려가는 듯하고, 불꽃이 말린 풀을 태우듯 번져가며, 바다의 물결이 숯불을 덮듯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니, 조조가 어찌 이 거대한 힘을 견뎌내겠습니까?

게다가 조조 군의 병사 중, 실제로 싸움을 할 수 있는 자들은 대부분 유주(幽州)와 기주(冀州) 출신입니다.
이들은 본래 고향의 영채에서 징집된 병졸들이며, 지금은 고향을 떠나 눈물로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집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속에 품고 있습니다.

그 외 연주(兗州), 예주(豫州) 출신의 병사들, 그리고 여포(呂布), 장양(張楊)의 잔여 병력들은 이미 전투에서 패한 뒤, 조조에게 협박당해 마지못해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 각자 창과 칼에 찔린 원한을 가슴에 안고 있는 이들로, 우리 군이 만약 깃발을 돌려 고지에 오르고, 북을 울리며 피리를 불고, 흰 기를 높이 들어 항복을 유도한다면—

조조의 군세는 무너져 내린 땅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기와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그들의 대열은 와해될 것이 분명합니다.

 

 

충신의 칼이 빛나야 할 때 — 격문의 마무리

지금 한나라 조정은 날로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고, 법도는 끊어졌으며, 조정 안에는 한 사람의 진정한 조력자도 남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은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닫은 채, 날개를 접은 새처럼 움츠리고 있어 기댈 곳 하나 없이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설령 충직하고 의로운 이들이 남아 있더라도, 포악한 권신 조조에게 눌려 그 충절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조조는 정예병 700명을 거느리고 황궁을 에워싸고는 겉으로는 ‘수호’라 말하나 실상은 황제를 억류하고 감금하며,
속으로는 제왕의 자리를 넘보는 역심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충신이 간과 뇌를 땅에 쏟아 희생할 때요,
의로운 열사가 몸을 바쳐 공을 세울 기회입니다.

이 어찌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조조는 감히 황제의 명을 위조하고, 자신의 뜻을 멋대로 명령으로 가장하여 사자를 보내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멀리 떨어진 주·군들이 그 소식을 듣고 경솔히 응했다가는 결국 명분을 잃고 반역자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이는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니, 총명한 자라면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하노라.
유주(幽州), 병주(幷州), 청주(靑州), 기주(冀州)의 네 주는 동시에 진군하고, 이 격문이 형주(荊州)에 도착하는 즉시, 병력을 정비하여 현재의 군사를 동원하고, 건충장군(建忠將軍)과 힘을 합쳐 위엄을 드러내고 세력을 떨치라.

각 주와 각 군은 모두 의병을 정비하고, 국경을 단단히 막아 외부의 침략을 방어하며, 무력을 바탕으로 위엄을 세워 무너진 사직과 조종(祖宗)의 제단을 함께 다시 세우자.
그리하면 비상한 공로와 명예는 바로 이때 이룩될 것이다.

나는 이제 천하에 명백히 밝히노라.
조조의 머리를 베어 오는 자에게는 오천 호(五千戶)의 땅을 가진 제후의 작위를 내리고, 오천만 전(五千萬錢)의 포상을 줄 것이다.
또한, 조조의 군대 가운데 부장(部將), 편장(偏將), 장교와 각 관직자들로서 투항하는 자에 대해서는 일체 죄를 묻지 않겠다.

널리 은혜와 신의를 베풀고, 상벌을 공정히 하여 천하에 포고하노라.
모든 백성들은 지금 이 순간, 황실이 위협받고 핍박받고 있다는 진실을 알아야 하며, 이 격문은 바로 하늘과 백성 앞에 드리는
막부의 간절한 호소이자 결의이다.
그러니 각자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정의를 따라 함께 나아갈지어다.

— 이 모든 명령은 율령에 따라 시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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