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삼국지연의 제23회 망언복약(2)

by 장만리 2025. 5. 18.
반응형

길평의 결의와 조조의 의심

한편, 조조는 예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웃으며 말하였다.
“썩은 유생의 혀가 칼 같더니, 결국 스스로를 죽였구나!”

그리고는 유표가 끝내 귀순하지 않은 것을 알고는 곧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물으려 하였다.

 

이에 순욱이 간하기를,
“원소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고, 유비도 제거되지 않은 이때에, 강한(江漢, 형주 지역)에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이는 마치 심장을 버려두고 손발을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원소를 멸하시고, 뒤이어 유비를 제거하신 후라야, 강한도 일거에 평정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조조는 이 말을 따랐다.
다시 말해, 동승은 유비가 떠난 뒤로 왕자복(王子服) 등과 날마다 은밀히 모의하였으나, 뚜렷한 계책이 없어 답답함에 병을 얻었다.
건안(建安) 5년, 정월 초하루의 조회에서 조조의 오만과 방자함은 더욱 심해졌고, 이에 분을 삭이지 못한 동승은 병이 도졌다.
헌제(獻帝)는 국구(國舅) 동승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의(太醫)를 붙여 치료하게 하였다.

이 태의는 낙양(洛陽) 사람으로 성은 길(吉), 이름은 태(太), 자는 평(平)이었으며, 당시 명의(名醫)라 하여 세상에서는 그를 길평(吉平)이라 불렀다.

길평은 동승의 저택에 드나들며 약을 달여 아침저녁으로 치료에 힘썼다. 

그는 늘 동승이 길게 한숨 쉬고 짧게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감히 묻지 못하였다.
마침 대보름이 되어 길평이 작별을 고하려 하자, 동승이 그를 붙잡고 함께 술을 나누었다.

밤이 깊도록 마시던 중 동승은 피곤을 느끼고 옷을 입은 채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왕자복, 오자란, 종집, 오석 네 사람이 찾아오자, 동승이 급히 나가 맞이하였다.

 

왕자복이 말하였다.
“큰일이 이루어질 기회가 왔소이다!”

동승이 놀라 반문하였다.
“무슨 말이오? 자세히 들려주시오.”

왕자복이 말하였다.
“유표는 이미 원소와 연합하여 오십만 대군을 일으켰고, 열 갈래로 나누어 서쪽으로 쳐들어올 준비를 마쳤소.

또한 마등은 한수와 손잡고 서량군(西涼軍) 칠십이만을 이끌고 북쪽에서 남하 중이오.
조조는 허창의 군사를 모두 동원해 적을 맞이하느라 성 안은 텅 비어 있소이다.

우리 다섯 집의 하인들만 모아도 천여 명은 될 것이오.

오늘 밤 부중(府中)에서 대보름을 맞아 연회를 연다고 하니, 그 틈을 타 조조를 포위하고 돌입하여 죽여야 하오.

절호의 기회요!”

동승은 기뻐하며 하인들을 불러 무기를 챙기게 하고, 자신도 창을 들고 말에 올라탔다. 

모두가 내문(內門) 앞에 모여 함께 진격하기로 약속하였다.
밤이 되어 두 번째 북이 울릴 무렵, 병사들이 모두 모였다. 

 

동승은 손에 보검을 쥐고 맨몸으로 조조가 연회를 벌이는 후당(後堂)에 돌입하며 외쳤다.
“조조 역적! 달아나지 마라!”

그리하여 한 칼에 조조를 베었으니, 조조는 쓰러졌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꿈에서 깨어났다. 

모든 것이 남가일몽(南柯一夢: 남쪽 가지에서의 한바탕 꿈 )이었고, 그는 여전히 입으로는 “조조 역적!”이라 욕을 내뱉고 있었다.

길평이 놀라 다가오며 외쳤다.
“장군, 혹시 조공을 해치시려 하셨습니까?”

동승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하였다. 

길평은 낮게 말하였다.
“국구께서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비록 의업에 종사하나, 한나라를 잊은 적은 없습니다.

날마다 국구께서 탄식하시는 것을 들었으나 감히 묻지 못했사옵니다.
하지만 방금 꿈에서의 말씀을 듣고 진심을 알게 되었사오니, 바라건대 제게 숨기지 마소서.

만일 제게 쓰임이 있다면, 비록 구족이 멸할지라도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동승은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다만 그대가 진심이 아닐까 염려되오.”

길평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물어뜯어 피로 맹세하며 말하였다.
“목숨을 걸고 하겠습니다.”

이에 동승은 의대(衣帶)에 감춘 밀조를 꺼내 길평에게 보여주며 말하였다.
“내 뜻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유현덕과 마등이 각기 떠나서 도울 자가 없기 때문이오. 그 시름으로 병이 생긴 것이오.”

길평이 말하였다.
“여러 분이 마음을 쏟으실 것 없습니다. 조조 역적의 목숨은 오직 제 손안에 있사옵니다.”

 

길평의 독살계와 내통의 발각

 

동승이 그 까닭을 묻자, 길평은 침착히 대답하였다.
“조조는 오래전부터 심한 두통을 앓고 있사온데, 그 고통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발작이 나면 곧 저를 불러 약을 쓰게 하옵니다.

조만간 다시 불러 치료하게 될 터이니, 그때 제가 독약을 넣어 복용하게 하면 단번에 죽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어찌 군사를 일으켜 피를 흘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동승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리 된다면, 한나라 사직(社稷)을 구할 수 있는 공로가 모두 그대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오!”

그날 밤, 길평은 작별을 고하고 돌아갔다. 

동승은 마음속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뒷당(後堂)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우연히 집안의 하인인 진경동이 첩 운영과 함께 어두운 곳에서 밀담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동승은 크게 분노하여 좌우에게 명하여 그들을 잡아들였다. 

그는 즉시 두 사람을 죽이려 하였으나, 부인이 만류하여 겨우 목숨은 살려주었다. 

대신 각기 등에 곤장을 마흔 대씩 내리고, 진경동은 냉방(冷房)에 쇠사슬로 가두었다.


진경동은 원한을 품고 밤 깊은 시각에 쇠사슬을 비틀어 끊고 담장을 넘어 탈출하였다. 

그는 곧장 조조의 관저로 들어가, 중대한 기밀이 있다고 고하였다.

조조는 그를 밀실로 불러들여 상세히 캐물었다. 진경동이 고하였다.
“왕자복, 오자란, 종집, 오석, 마등 — 이 다섯 인물이 저희 주인의 저택에 모여 매우 은밀한 논의를 했습니다.

분명히 승상을 해하려는 모의였습니다.

또한 주인께서 흰 비단 조각 하나를 꺼내었는데, 거기에 무슨 글을 적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태의 길평이 손가락을 물어뜯어 맹세하는 것도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조조는 진경동을 집 안 깊숙이 숨겨두었다. 

동승은 그가 어디론가 달아났을 뿐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음 날, 조조는 일부러 두통을 가장하고 길평을 불러 약을 쓰게 하였다.

 

길평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제 이 역적은 끝났구나!’

그리고는 독약을 몰래 지니고 조조의 관저에 들어갔다. 

조조는 침상에 누워 길평에게 투약을 명하였다. 

길평은 공손히 아뢰었다.
“이 병은 약 한 첩이면 곧 낫습니다.”

그리고는 약탕기를 직접 가져와 조조 앞에서 달이기 시작하였다. 

약이 반쯤 졸아들었을 즈음, 길평은 미리 준비한 독약을 몰래 투입하고, 정성껏 달인 약을 조조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조조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일부러 시간을 끌며 약을 입에 대지 않았다.

길평이 말하였다.
“약은 뜨거울 때 드셔야 땀이 나고 곧 쾌차하십니다.”

조조가 몸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경(卿)은 유가(儒家)의 경전을 읽은 사람으로서 예(禮)를 아는 자일진대, ‘임금이 병들면 신하가 먼저 약을 맛보고, 아버지가 병들면 자식이 먼저 맛본다’ 하였소.

나는 그대를 심복으로 여기거늘, 어찌 먼저 맛보지 않고 올리겠소?”

길평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하였다.
“약이 병을 고치는데 어찌 꼭 사람이 먼저 맛보아야 하겠습니까?”

그리 말했으나, 마음속으로는 모든 것이 발각되었음을 직감하였다. 

이에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조조의 귀를 움켜쥐고 억지로 약을 들이마시게 하려 하였다.

조조는 그 약을 손으로 밀쳐버리니, 약탕이 바닥에 쏟아져 그 자리의 벽돌이 다 갈라질 정도였다. 

독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케 하였다.

 

 

길평의 순절과 의대조의 발각

 

조조가 아직 말도 꺼내기 전에, 좌우의 호위들이 이미 길평을 포박하여 끌어내렸다.

 

조조가 말하였다.
“내가 어찌 병이 있었겠는가?

단지 경(卿)을 시험해 본 것뿐이오.

그런데 너는 과연 나를 해치려는 마음을 품었구나!”

즉시 건장한 옥졸 스무 명을 불러 후원(後園)으로 끌고 가 가혹한 고문을 가하게 하였다. 

조조는 정자 위에 앉아 있고, 길평은 거꾸로 묶여 땅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길평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의연함을 보였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였다.
“경은 의업에 종사하는 자일뿐인데, 어찌 감히 독약을 써서 나를 해치려 했는가?

분명 누군가가 그대를 사주한 것이겠지. 만약 그 자의 이름을 댄다면, 나는 너를 용서하겠다.”

길평이 꾸짖듯 말하였다.
“너는 임금을 속이고 상하 질서를 무너뜨린 역적이니, 온 천하가 모두 너를 죽이고자 한다!

어찌 나 혼자만의 뜻이라 하겠는가?”

조조가 거듭 회유하며 이름을 대라고 재촉하자, 길평이 소리쳤다.
“나는 스스로 너를 죽이려 한 것이다.

누가 나를 시킨 것이 아니다!

일이 이뤄지지 못한 지금, 내게 남은 길은 죽음뿐이다!”

조조가 노하여, 옥졸에게 맹타를 명하였다. 

이리하여 두 시진(四時辰: 약 4시간 ) 가량 매질하니, 살점이 터지고 피가 계단을 적셨다.

조조는 그가 맞아 죽어 진상을 캐지 못할까 염려되어, 옥졸에게 명하여 조용한 곳으로 옮겨 숨을 돌리게 하였다.

다음 날, 조조는 조회를 열어 문무백관을 초청해 술자리를 베풀었다. 

오직 동승만이 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왕자복 등은 조조의 의심을 살까 두려워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후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술이 돌 무렵 말하였다.
“연회석에 흥을 돋울 사람이 없어 안타깝소.

내가 오늘 술을 깨게 할 만한 자를 보여주겠소이다.”

그러고는 옥졸 스무 명을 불러 명하였다.
“그 자를 끌어오라!”

잠시 후, 길평이 무거운 형틀을 목에 두른 채 끌려 나와 계단 아래에 세워졌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였다.
“여러 분은 모르시겠지만, 이 자는 흉한 무리들과 공모하여 조정을 배반하고 나를 해치려 하였소.

오늘 하늘의 뜻으로 이 자의 음모를 알아챘으니, 그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시지요.”

조조는 먼저 길평을 호되게 매질하라 명하였다. 

길평은 곧 땅에 쓰러져 혼절하였고, 물을 끼얹어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외쳤다.
“조조 역적! 네가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언제 죽일 것이냐!”

조조가 말하였다.
“공모자는 여섯이라 하니, 너까지 일곱이로구나?”

길평은 끝없이 욕을 퍼부을 뿐, 어떠한 이름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왕자복 등 네 사람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조조는 한편으로는 계속 매질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을 끼얹게 하였다. 

그러나 길평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고, 단 한마디도 고백하지 않았다.
조조는 길평이 끝내 굽히지 않자, 우선 그를 끌어가게 하였다.

 

연회가 끝나자 조조는 왕자복 등 넷만 남겨 밤늦게까지 자리를 함께 하였다. 

넷은 겁에 질려 혼이 나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조조가 말하였다.
“본래는 여러분을 보내려 하였소.

그러나 물을 것이 있어 이렇게 남긴 것이오.

그대들은 동승과 어떤 일을 상의하였소?”

왕자복이 답하였다.
“별다른 의논은 없었사옵니다.”

조조가 물었다.
“그 흰 비단 조각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소?”

네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에 조조는 진경동을 불러 대질시키게 하였다. 

 

왕자복이 외쳤다.
“너는 어디서 그걸 보았느냐?”

진경동이 대답하였다.
“너희들이 사람들 눈을 피해 여섯 명이 모여 무언가를 적고 서명하였소.

어찌 이제 와서 발뺌하는가?”

왕자복은 이를 부정하며 말하였다.
“이 도적놈은 우리 집주인의 첩과 간통하여 혼이 나자, 주인을 무고하려는 것이니, 그 말을 믿어선 안 됩니다!”

조조가 냉정히 말하였다.
“길평이 독약을 탄 것이 동승이 시킨 일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시킨 것이냐?”

왕자복 등은 모두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조조가 차갑게 일갈하였다.
“오늘 밤 자수하면 아직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끝까지 버틴다면, 죄가 밝혀졌을 때는 더는 관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네 사람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모르는 일이라 주장하였다. 

조조는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네 사람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의대조의 발각과 길평의 장렬한 최후

 

이튿날, 조조는 여러 무관을 이끌고 직접 동승의 집으로 문병하러 갔다.

동승은 뜻밖의 방문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와 맞이하였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였다.
“어찌하여 어젯밤 연회에는 참석하지 않으셨소?”

동승이 대답하였다.
“몸이 아직 낫지 않아 경솔히 밖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조조가 냉소하며 말하였다.
“그 병은 나라를 걱정하는 병이 아니오?”

동승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조조가 이어 말하였다.
“국구께서는 혹시 태의 길평의 일에 대해 아시오?”

동승이 급히 대답하였다.
“모르는 일입니다.”

조조는 냉소를 머금은 채 좌우에게 명하였다.
“그 자를 끌고 와 국구의 병을 고치게 하라.”

잠시 후, 스무 명의 옥졸이 형틀에 묶인 길평을 끌고 와 동승 앞에 세웠다. 

 

길평은 계단 아래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조조 역적! 네가 역적이다!”

조조는 길평을 가리키며 동승에게 말하였다.
“이 자가 이미 왕자복 등 네 사람과 내통하였고, 나는 이미 그들을 포박하여 정위(廷尉)에 넘겼소.

아직 한 명이 빠져 있는데, 그가 바로 그대요.”

그리고는 길평에게 다그쳐 물었다.
“누가 너를 시켜 나를 독살하게 했는가? 어서 고백하라!”

길평은 의연히 외쳤다.
“하늘이 나를 보내어 너 같은 역적을 죽이라 하였을 뿐이다!”

조조가 분노하여 형벌을 가하게 하였다. 

길평의 온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었고, 매질은 피와 살이 엉켜 계단을 붉게 물들였다.
동승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심장이 찢기는 듯하였다.

조조가 다시 물었다.
“네가 본래 열 손가락이 있었는데, 어찌하여 지금 아홉뿐이냐?”

길평이 외쳤다.
“한 손가락은 물어뜯어 맹세하였느니라!

나는 나라의 역적을 죽이겠노라고 피로 맹세하였느니라!”

조조는 이에 칼을 들게 하여, 계단 아래에서 길평의 남은 아홉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버리게 하며 말하였다.
“이제는 맹세도 못 하겠구나!”

그러나 길평은 의연히 외쳤다.
“나는 아직 입이 있다!

이 입으로 역적을 씹어 삼킬 것이며, 혀가 있으니 끝끝내 너를 욕하리라!”

조조는 혀를 베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길평이 갑자기 소리쳤다.
“잠깐 손을 멈추시오!

내가 형벌을 더는 이겨내지 못할 것이니 자백하겠소.

먼저 이 포박을 풀어주시오!”

조조는 웃으며 말하였다.
“결박을 푸는 것이야 무엇이 어려우랴.”

곧 결박을 풀게 하니, 길평은 몸을 일으켜 궁궐을 향해 절하였다. 

 

그리고는 말하였다.
“신이 역적을 죽이지 못한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절을 마친 길평은 곧장 계단 아래로 머리를 내리찍어 스스로 죽었다.
조조는 명하여 그의 사지를 찢어 육시(戮屍:죽인 뒤에 그 시신을 사지(四肢)로 찢거나, 토막 내어 전시하는 형벌)하게 하고, 그 형상을 널리 알리게 하였다.

 

이때가 바로 건안 5년 정월, 역사가 길평의 죽음을 기록한 해였다.

 

이에 사관이 길평을 기려 시를 지었다.

漢朝無起色,醫國有稱平;
立誓除奸黨,捐軀報聖明。
極刑詞愈烈,慘死氣如生;
十指淋漓處,千秋仰異名。

한나라는 부흥의 기미 없이,
나라의 의원은 다만 길평뿐이었도다.
간신을 제거하리라 맹세하고,
몸을 버려 성상께 보답했네.
극형을 당해도 그의 말은 더욱 장렬했고,
비참히 죽었으나 그 기개는 살아 있었네.
열 손가락 피 흘린 자리에,
천 년이 지나도 그 이름을 우러르리라.

 

 

의대조의 발각과 헌제 폐립 음모

 

조조는 길평이 죽은 뒤, 좌우를 불러 명하였다.
“도망친 하인 진경동을 이리 끌어오라.”

진경동이 끌려오자, 조조는 동승에게 말하였다.
“국구께서는 이 자를 아시겠소?”

동승이 노기를 띠며 외쳤다.
“이 도망친 종놈이 여기 있었구나!

당장 참해야 하오!”

조조는 냉정히 응수하였다.
“그가 바로 반역 음모를 고한 자요.

이제 대질하려 하니, 누가 그를 죽이겠소?”

동승은 언성을 높였다.
“승상께서는 어찌 이 하찮은 종놈의 말 한마디만 듣고 모든 것을 믿으시오?”

조조는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왕자복, 오자란, 종집, 오석 — 그들 모두를 나는 이미 포박하여 정위(廷尉:형벌・재판・감옥을 총괄하던 관직)에 넘겼고, 대질조사도 이미 끝났소.

그런데도 아직 부인하려 하시오?”

곧이어 조조는 좌우에게 명하였다.
“동승을 잡아라.”

그러고는 즉시 하인을 시켜 동승의 침실로 들이닥치게 하여, 의대조와 함께 모의문서(義狀)를 수색해내게 하였다.

조조가 그것들을 펼쳐 읽어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쥐새끼 같은 무리들이 어찌 감히 이런 일을 꾸몄단 말인가!”

그는 바로 명을 내려 말하였다.
“동승의 집안사람들 중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체포하라.

단 한 사람도 놓치지 마라!”

조조는 곧 자기 관저로 돌아와 여러 책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의대조와 모의문서를 모두 꺼내 보이며 심각한 어조로 말하였다.
“이 조서와 음모문서를 보라. 헌제를 등에 업고 나를 죽이고자 한 이 무리들, 이제 헌제마저 믿을 수 없게 되었구나.

나는 새 황제를 세워야 하겠소이다.”

이리하여 조조는 헌제를 폐하고 다른 이를 옹립할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려 하였다.



數行丹詔成虛望,
一紙盟書惹禍殃。

몇 줄 붉은 피로 쓴 조서는 허망한 희망이 되었고,
한 장의 맹약서는 재앙을 불러왔도다.


헌제의 운명이 과연 어찌 될지는,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알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