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계책, 적의 항복을 막다
현덕(유비)이 말했다.
“옛날 고조 유방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항복하는 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한충의 항복을 거절하십니까?”
주준이 대답했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오.
진나라와 항우가 맞서던 시절, 백성들은 주인을 잃어 모든 항복을 받아들이고 포상하는 것이 필요했소.
지금은 황건적이 유일하게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니, 만약 이들의 항복을 받아들인다면 정의를 세우기 어렵소.
그들은 이길 때는 약탈을 하고, 지면 항복하려 드니 이는 길게 끌면서 나라를 어지럽히려는 술책일 뿐이오.”
현덕이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적의 항복을 막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지금 성을 사방에서 철통같이 포위했으니, 항복이 거절되면 적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저항하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동남쪽에서 군사를 물리고 서북쪽만을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적은 틀림없이 성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고, 그때를 틈타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주준이 수긍하여 동남쪽에서 군사를 물리고 서북쪽만을 집중 공격하니, 한충이 군사를 이끌고 성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주준과 현덕, 관우, 장비가 삼군을 이끌고 그들을 맹렬히 추격해 한충을 활로 쏘아 죽였습니다.
나머지 무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추격하던 중, 조홍과 손중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주준과 교전했습니다.
적세가 강하자 주준은 잠시 후퇴했으나, 조홍이 기세를 타고 완성을 다시 빼앗았습니다.
주준은 십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젊은 용장, 손견의 등장
주준이 막 공격을 준비하려는데, 동쪽에서 한 무리의 군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앞장선 장수는 넓은 이마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호랑이 같은 사내였습니다.
그는 오군 부춘 출신으로, 성은 손, 이름은 견, 자는 문태였습니다.
그의 조상은 손무였습니다.
손견은 17세에 아버지와 함께 전당에 갔다가 해적들이 상인의 물건을 약탈해 해안에서 나누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놈들은 잡을 수 있습니다!"
손견은 칼을 들고 해안에 올라가 큰 소리로 외치며 동서로 지휘하자, 해적들은 관군이 온 줄 알고 모두 도망쳤습니다.
손견은 한 해적을 따라가서 처치했습니다.
이 일로 이름이 알려져 교위로 천거되었습니다.
그 후, 회계에서 요망한 도적 허창이 반란을 일으켜 자칭 ‘양명황제’라 칭하고 수만의 무리를 모았습니다.
손견은 사마와 함께 용사를 천여 명 모아 주군의 군사들과 연합해 반란군을 쳤습니다.
손견은 허창과 그의 아들 허소의 목을 베었습니다.
자사 장민은 표문을 올려 그의 공로를 인정해 조정은 손견을 염독승으로 임명하고 이후 하비와 우이 지역의 보좌직에 차례로 임명했습니다.
지금 황건적이 일어나자, 손견은 마을의 젊은이들과 상인들, 회수와 사수의 정예병 1500명을 모아 지원군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남문을 깨고 승리로 가는 길
주준은 크게 기뻐하며, 손견에게 남문을, 현덕에게 북문을, 자신은 서문을 공격하라 명하고, 동문은 적이 도망칠 구멍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손견이 가장 먼저 성 위로 올라가 적 스무 명을 베어내자, 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때 조홍이 말을 몰아 창을 겨누며 손견에게 돌진해 왔습니다.
손견은 성벽에서 몸을 날려 조홍의 창을 빼앗아 조홍을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이어 조홍의 말을 타고 날렵하게 적들을 무찌르며 싸웠습니다.
한편, 손중은 북문으로 도망치려다 현덕과 마주쳤고, 싸울 생각 없이 도망치기 급급했습니다.
현덕이 활을 당겨 쏜 화살은 정확히 손중을 맞혔고, 손중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주준의 대군은 그 뒤를 따라와 적들을 포위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수만 명의 적이 목숨을 잃고, 항복한 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그 결과 남양 일대 열여섯 개 군이 평정되었습니다.
주준은 승리를 거두고 낙양으로 돌아가 '거기장군'과 '하남윤'에 봉해졌습니다.
주준은 손견과 유비 등의 공을 조정에 표상하여, 손견은 다른 고을의 군사담당으로 발령받아 갔으나, 현덕은 오랫동안 기다렸으나 여전히 관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황건적 토벌 후의 억울한 대우
현덕이 장균을 보자 자신들의 공적을 설명하니, 장균은 깜짝 놀라 황제에게로 들어가 아뢰었습니다.
"예전에 황건적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은 십상시들이 관직을 팔아먹고, 자기편이 아니면 등용하지 않고, 원수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악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제 십상시를 참수하여 그 머리를 남교에 매달고, 사자를 보내어 천하에 알리고, 공이 있는 자에게는 두둑한 상을 내린다면 나라가 평온해질 것입니다."
십상시는 이 말을 듣고 황제에게 “장균이 임금을 속입니다!”라며 아뢰었고, 황제는 무사를 시켜 장균을 내쫓았습니다.
십상시들은 모여 상의하며 말하였습니다.
“황건적을 무찌른 이들이 관직을 얻지 못하자 불평을 터뜨리는구나. 임시로 작은 직책이라도 내리자.”
결국 현덕은 중산부 안희현 현위에 임명되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소박한 현덕과 그의 충직한 형제들
현덕은 군사를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친히 따르는 20여 명과 함께 관우, 장비와 안희현에 도착해 현위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고을 일을 보며 백성들에게 조금의 피해도 주지 않으니, 백성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현덕은 임지에 도착한 후 관우와 장비와 함께 식사를 할 때는 같은 탁자에서 먹고, 잘 때도 같은 침상에서 잤습니다.
현덕이 많은 사람 속에 앉아 있으면, 관우와 장비는 하루 종일 그 곁에서 지치지도 않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현덕이 부임한 지 4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조정에서 조서를 내려 ‘군공을 세운 자는 선별하여 벼슬에서 제외한다’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현덕은 자신이 그 대상이 될지 의심했습니다.
때마침 감찰관인 독우가 현의 업무를 순회하며 방문했습니다.
현덕은 성 밖까지 나가 그를 맞이하며 예를 갖췄으나, 독우는 말 위에 앉아 채찍으로 손가락만 움직여 대답하는데 그쳤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이를 보고 크게 화를 냈습니다.
역관에 도착해서 독우는 남쪽을 향해 높은 자리에 앉았고, 현덕은 계단 아래에서 예를 갖춰 서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야 독우가 물었습니다.
“유현위는 어떤 출신인가?”
유비의 결백과 감찰관의 탐욕
유비가 말했습니다.
“저는 중산정왕의 후손이며, 탁군에서 황건적을 토벌해 크고 작은 싸움을 서른여 번 치렀습니다. 미약하나마 공적이 있어 지금의 관직을 받았습니다.”
감찰관이 크게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네가 황실의 친척을 사칭하고 공적을 부풀렸구나! 조정에서 바로 네 같은 탐관오리를 걸러내려는 것이다!”
유비는 조용히 연신 “예, 예” 하고 물러났습니다.
현으로 돌아와 아전들과 상의하니, 한 아전이 말했습니다.
“감찰관이 위세를 부리는 건 다 뇌물을 노리는 겁니다.”
유비가 답했습니다.
“백성들에게서 털끝만큼도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 어디에 뇌물로 바칠 돈이 있단 말인가?”
다음 날, 감찰관은 아전들을 먼저 불러 유비가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고 증언하라 협박했습니다.
유비는 몇 번이나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문지기가 가로막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