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袁紹磐河戰公孫 孫堅跨江擊劉表
원소반하전공 손견과강격유표
원소는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강을 건너 유표를 공격하다.
손견과 유표의 결별
손견이 유표에게 포위당했으나, 다행히도 장수 정보, 황개, 한당 세 장수가 목숨을 걸고 구해주어 겨우 빠져나왔다.
하지만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었으며, 간신히 길을 열고 군사를 이끌고 강동으로 돌아갔다.
이로부터 손견과 유표 사이에는 깊은 원한이 생겼다.
원소, 기주를 취하기 위한 계략
한편, 원소는 하내(河內)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나, 군량과 마초가 부족하였다.
이에 기주목 한복이 사람을 보내어 군용으로 쓰라고 군량을 지원하였다.
모사 봉기가 원소에게 말하기를
“대장부(大丈夫)가 천하를 종횡무진하며 다스리는 데, 어찌 남이 보내주는 군량으로 살아가겠습니까?
기주는 돈과 양식이 풍성한 땅이니, 장군께서 어찌하여 그곳을 취하지 않으십니까?”
원소가 대답하였다.
“아직 좋은 계책이 없다.”
봉기가 말하기를
“사람을 몰래 시켜 공손찬(公孫瓚)에게 글을 보내어, 군사를 일으켜 기주를 치도록 하고, 우리와 협공(挾攻)하기로 약속하면 공손찬이 반드시 군사를 동원할 것입니다.
한복은 무능한 자이니, 틀림없이 장군을 청하여 기주의 일을 맡기려 할 것입니다.
그때 안에서 기회를 보아 행동하면, 손쉽게 그곳을 얻을 수 있습니다.”
원소가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공손찬에게 글을 보냈다.
공손찬이 글을 받아보니, 기주를 함께 공격하여 그 땅을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공손찬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군사를 일으켰다.
한복, 원소를 청하며 위기에 직면하다
한편, 원소는 사람을 보내 몰래 한복에게 소식을 전했다.
한복은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순심과 신평 두 모사를 불러들여 상의했다.
순심이 말하기를,
“공손찬이 연주와 대주의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오면 그 예봉을 막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유비, 관우, 장비까지 그를 돕고 있으니 대적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지금 원본초(원소의 자)는 지략과 용기가 남다르고 수하에 능력 있는 장수가 매우 많습니다.
장군께서는 그와 함께 기주를 다스리자고 청하면, 그는 반드시 장군을 후하게 대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공손찬의 위협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한복은 즉시 별가(보좌관) 관순을 시켜 원소를 초청하게 했다.
하지만 장사(부관) 경무가 간언 하며 말했다:
“원소는 외로운 나그네에다 곤궁한 군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은 품에 안긴 갓난아이와 같아서 젖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고을의 일을 그에게 맡기려 하십니까?
이는 호랑이를 양의 무리로 끌어들이는 꼴입니다!”
그러자 한복이 답했다:
“나는 원씨 집안의 옛 벼슬아치였고, 재능이 또한 원본초만 못합니다.
옛날 성인은 어진 사람을 택하여 양보했으니, 여러분은 어찌 질투하는가?”
경무는 탄식하며 말했다:
“기주는 이제 끝장입니다!”
결국 경무를 포함하여 30여 명의 관리가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그러나 경무와 관순은 성 밖에 숨어 있다가 원소를 기다렸다.
원소의 기주 점령과 한복의 후회
며칠 뒤, 원소가 군사를 이끌고 기주에 도착했다.
이에 경무와 관순이 칼을 뽑아 들고 나와 원소를 암살하려 했다.
그러나 원소의 장수 안량이 먼저 경무를 참수하고, 문추가 관순을 베어 죽였다.
원소는 기주에 들어가 한복을 분위장군으로 임명하고, 전풍, 저수, 허유, 봉기에게 주의 일을 나누어 맡기게 했다.
이로써 한복은 모든 권력을 잃고, 권세를 빼앗긴 후 크게 후회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가족을 내버려 두고 홀로 말을 타고 진류태수 장막에게 몸을 의탁하러 갔다.
공손찬의 분노와 복수
공손찬은 원소가 이미 기주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동생 공손월을 보내어 원소를 만나 그 땅을 나누자는 요청을 하게 했다.
이에 원소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형이 직접 와서 이야기한다면 내가 논의해 보겠다.”
공손월은 이를 듣고 물러나 돌아가는 길에, 50리를 가지 못한 곳에서 길가에 갑자기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났다.
그들은 스스로를 “나는 동승상의 집안 장수다!”라고 외치며 어지럽게 화살을 쏘아 공손월을 죽였다.
공손월의 시종이 도망쳐 공손찬에게 돌아와 공손월이 죽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공손찬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하며 말했다.
“원소가 나를 꾀어 한복을 공격하게 하더니, 이제 와서 자신이 기주를 차지하고, 또 동탁의 병사를 사칭하여 내 동생을 죽이다니! 이 원한을 어찌 갚지 않겠는가!”
공손찬은 자신의 본부에 있는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기주를 공격하러 나아갔다.
반하교의 격돌과 공손찬의 패주
원소는 공손찬의 군대가 이르는 것을 알고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두 군대는 반하교(磐河橋)에서 마주쳤다.
원소의 군대는 반하교의 동쪽에, 공손찬의 군대는 서쪽에 진을 쳤다.
공손찬은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크게 소리쳐 말했다.
“신의를 배신한 자들이여! 어찌 감히 나를 속이느냐!”
원소 또한 말을 몰아 다리 옆으로 다가가 공손찬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한복이 재능이 없어 기주를 나에게 양보했으니, 너와 무슨 상관이냐?”
공손찬이 분노하며 말했다.
“지난날 내가 너를 충성스럽고 의로운 자로 생각하여 맹주로 추대했는데, 지금 하는 짓을 보니 참으로 이리 같은 마음과 개 같은 행동을 하는 자로구나.
무슨 낯으로 세상에 설 수 있겠느냐!”
원소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누가 저놈을 붙잡아 오겠느냐?”
말이 끝나자마자 문추가 말을 몰아 창을 들고 다리 위로 질주했다.
공손찬은 다리 옆에서 문추와 맞붙었다.
10합도 되지 않아 공손찬이 버티지 못하고 패해 달아났다.
문추가 형세를 몰아 추격했다.
공손찬이 진영으로 달아나자 문추가 말을 달려 중군으로 질주하며 이리저리 돌며 공격했다. 공손찬의 부하 장수 4명이 문추를 맞으러 나섰으나, 문추가 창으로 그중 한 장수를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고, 나머지 세 장수는 모두 도망쳤다.
문추는 곧바로 공손찬을 추격하여 진영 뒤로 쫓았다.
공손찬은 산골짜기를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문추가 말을 채찍질하며 분노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빨리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공손찬은 활과 화살을 모두 떨어뜨리고, 투구도 벗겨져 땅에 떨어졌으며, 머리를 풀어헤친 채 말을 몰았다.
그러나 말이 앞으로 넘어지며 공손찬이 산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조운의 등장과 공손찬의 구원
문추가 급히 창을 잡고 찌르려 하였다.
갑자기 풀밭 언덕 왼쪽에서 한 젊은 장수가 튀어나왔다.
그 장수는 말을 타고 창을 높이 세운 채 문추를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공손찬은 그 틈을 타 언덕 위로 기어 올라갔다.
공손찬이 내려다보니 그 젊은 장수는 키가 8척(약 184cm) 정도 되고, 짙은 눈썹과 큰 눈, 넓적한 얼굴에 이중턱을 가진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그 젊은 장수는 문추와 대략 50~60합을 치열하게 싸웠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다.
공손찬의 부하 구원군이 도착하자, 문추는 말을 돌려 물러갔다.
그 젊은 장수는 추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공손찬은 황급히 언덕을 내려와 그 젊은 장수의 이름을 물었다.
그 장수는 몸을 굽혀 예를 갖추며 말하였다.
“저는 상산군 진정현 사람으로, 성은 조이고 이름은 운, 자는 자룡입니다.
본래 원소의 수하에 있었으나 원소가 충성스럽게 임금을 섬기거나 백성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 그를 떠나 특별히 장군의 깃발 아래로 들어오려 하였습니다.
뜻밖에도 이곳에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공손찬은 크게 기뻐하며 그와 함께 진영으로 돌아가 무장과 군사를 정비하였다.
공손찬의 백마군 대 원소의 전투 배치
다음 날, 공손찬은 군마를 좌우 두 부대로 나누어 그 배치가 마치 날개를 펼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군마 5천여 필을 거느렸는데, 그중 태반이 모두 백마였다.
이는 공손찬이 이전에 강족과의 전투에서 백마를 선봉으로 세워 백마장군이라 불린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강족들은 백마만 보면 겁을 먹고 달아나곤 했기에, 공손찬의 백마는 그 숫자가 매우 많았다.
원소는 안량과 문추를 선봉으로 세우고, 각각 궁수와 쇠뇌병 1천 명을 좌우 양쪽으로 나눠 배치했다.
좌익 부대는 공손찬의 우군을 향해 사격하도록, 우익 부대는 공손찬의 좌군을 향해 사격하도록 명령했다.
또, 국의에게 궁수 800명과 보병 1만 5천 명을 이끌게 하여 진의 중앙에 배치했다.
원소는 직접 말과 보병 수만 명을 거느리고 후방에서 지원에 나섰다.
한편, 공손찬은 새로 얻은 조운을 아직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그에게 별도의 군사를 맡겨 후방에 배치했다.
조운의 활약과 공손찬의 역습
공손찬은 대장 엄강을 선봉으로 삼아 보냈다.
자신은 중군을 지휘하며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말 앞에 붉은 원에 금실로 수놓은 ‘수(帥)’ 자 깃발을 세웠다.
진시(오전 7시에서 9시)부터 북을 울리며 준비를 했지만, 사시(오전 9시에서 11시)가 되어도 원소의 군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 국의는 명령을 내려 궁수들이 화살막이 방패 아래 숨어 있다가 포성이 울리면 일제히 화살을 쏘도록 했다.
엄강은 북소리를 울리며 함성을 지르며 곧바로 국의를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국의의 군사들은 엄강의 군대가 가까이 올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하지 않았다.
엄강의 군대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 오자, 갑자기 한 번의 포성과 함께 800명의 궁수와 쇠뇌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엄강은 퇴각하려 했으나, 국의가 말을 몰고 칼을 휘두르며 돌진해 와 그를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에 공손찬의 군대는 대패했다.
좌우 양군이 구원하려 했으나, 모두 안량과 문추가 이끄는 궁수의 화살에 저지당했다.
원소의 군대는 전진하며 다리 근처까지 쳐들어왔다.
국의는 말을 몰아 기수를 베고 수놓은 깃발을 찢어버렸다.
공손찬은 깃발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말을 돌려 다리 아래로 도망쳤다.
국의는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후군을 공격했으나, 조운과 마주치게 되었다.
조운은 창을 들고 말을 몰아 바로 국의를 겨냥했다.
두 사람이 몇 합 싸우지 않아, 조운은 단숨에 국의를 창으로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조운은 홀로 말을 타고 원소의 군대로 뛰어들어 좌우로 적들을 쳐부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적진을 돌파했다.
공손찬은 군대를 이끌고 역습하며 싸워, 원소의 군대를 대패시켰다.
조운의 돌격과 원소의 위기
원소는 먼저 정찰병을 보내 적의 상황을 파악하도록 했다.
정찰병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국의가 적의 장수를 베고 깃발을 빼앗으며 패주 하는 군사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원소는 전혀 대비하지 않은 채, 전풍과 함께 휘하에서 창을 든 군사 수백 명과 궁수 수십 명를 이끌고 말을 타고 밖으로 나가 상황을 구경하며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공손찬은 무능한 자로구나!”
그렇게 말하던 중, 갑자기 조운이 말을 몰고 면전에 돌진해 왔다.
궁수들이 급히 활을 쏘려 하였으나 조운은 연달아 몇 명을 찌르고 군사들을 흩어놓았다.
그 뒤로 공손찬의 군사들이 겹겹이 둘러싸며 몰려들었다.
전풍이 급히 원소에게 말했다.
“주공께서는 공터 안의 담장 속으로 몸을 숨기십시오!”
그러나 원소는 투구를 땅에 내던지며 크게 외쳤다.
“대장부는 전장에서 싸우다 죽기를 원할지언정 어찌 담장 속에서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 말을 들은 원소의 군사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다.
조운은 여러 번 돌격했으나 진입하지 못하였고, 그 사이 원소의 대군이 몰려들었다.
안량 또한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여 두 갈래로 공격했다.
조운은 공손찬을 보호하며 포위망을 뚫고 경계의 다리로 돌아갔다.
원소는 대군을 몰고 진격하여 다리를 넘었고, 이 과정에서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